윤여선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lumielyoon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6.27 09:26
윤여선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lumielyoon
윤여선 개인전
<잔존하는 감각>
2026.6.23~7.11
수에뇨339 @sueno339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윤여선(b.1987)
사라지지 않기 위한 감각의 박제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작가는 이번 신작을 그리던 무렵, 미국의 한 컬렉터로부터 자코메티에 관한 책을 추천받았다. 끝없이 깎이고 다시 세워지며 결국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본질'에 도달하려 했던 그 마른 인체들. 책을 읽은 직후 우연히 실제 자코메티의 작품을 마주한 작가는, 자신이 그리고 있던 인물이 정확히 같은 질문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화면 속 인물은 얼굴도 표정도 지워진 채 흰 빛의 잔상 같은 것을 들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풍경 속 누군가가 아니라, 감각을 채집하러 다니는 작가 자신의 뒷모습에 가깝다. 작가는 이를 '수행자적 개념'이라 부른다. 무언가를 재현하려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사이를 걸어가는 한 존재의 행위 자체를 담은 것이다.
윤여선은 동양화로 학·석·박사를 모두 마친 작가다. 그런데 이번 신작은 전부 아크릴이다. 건조 공정에 따른 체력적 부담, 장마철 습기로 작품이 손상됐던 경험, 해외 시장에서 동양화가 '드로잉'으로 평가절하되는 현실. 세 가지 구체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작가는 아크릴 표면에 석고를 여러 차례 올리고 끊임없이 사포질을 반복해, 동양화 특유의 '겹겹이 쌓는' 축적의 감각을 그대로 옮겨왔다. 재료는 결국 매체의 표면일 뿐, 작가가 진짜 옮기고 있는 것은 '시간을 쌓는 행위' 그 자체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기 위해 더 단단하고 오래가는 물질을 선택하는 역설, 그것이 작가가 작가노트에서 말한 '감각의 박제'다.
면이 분할된 화면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프레그난츠 법칙'처럼, 눈은 끊어진 경계를 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것을 하나의 풍경으로 다시 이어 붙인다. 위상수학적으로 경계는 면적을 갖지 않는, 사실상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바로 그 면적 없는 선이 양쪽의 안정을 동시에 보장한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들고 있는 균형의 형태인 것이다.
작가는 최근 자신의 작업을 R.V.C(리듬·여백·정서온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음악의 리듬, 건축의 여백, 물리학의 온도. 모두 측정 가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시리즈명을 '어페이로(APEIRO)'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만물의 근원으로 제시한, 규정되지 않은 무한자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미국의 붉은 사막을 담은 작품 앞에서 나는 영화 〈노매드랜드〉를 떠올렸다. 정착할 곳 없이 밴 한 대에 의지해 떠돌면서도 계속 살아 있다는 감각. 영주권 유지를 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 하는 작가의 처지를 알고 나니, 이 풍경은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임을 알게 됐다. 실제로는 보랏빛이었던 톤이 화면에서는 옥빛 파란색으로 재구성된 것도 같은 이유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처럼, 색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그날 몸이 느낀 온도의 기록이다.
옆의 좁고 긴 캔버스, 파도를 타는 서퍼의 작은 실루엣을 보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렸다. 빈손으로 돌아왔어도 그는 분명히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인생 파도타기'라 부른다. 캔버스 상단의 메마른 사막과 하단의 솟아오르는 파도가 한 사람의 삶 안에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두 풍경을 한 화면에 병치시키는 것만으로 보여준다.
〈잔존하는 감각〉은 사라짐을 슬퍼하는 전시가 아니라, 사라지는 와중에도 무언가는 반드시 남는다는 것을 — 자코메티가 깎고 깎아 남긴 마지막 형태처럼, 노인이 빈손으로도 증명해낸 생존처럼 — 조용히 증명하는 전시였다.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를수록 관람객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천천히 고르게 된다. 작가가 "직접 호흡을 환기"한다고 쓴 문장이,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몸으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윤여선은 성균관대학교 미술학 학·석·박사를 모두 마친 작가·연구자·평론가다. 성균관대와 인천대에서 강의했고, 한동안 미국 캐롤라인대학 겸임교수로도 재직했다. 2024년 국회 아트갤러리, 스페이스XX,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태국 부라파대학교 KSBDA 국제초대전 등에서 활발히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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