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미진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chunmijin_studio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6.20 10:31
천미진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chunmijin_studio
천미진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 Where Hue Is Folded>
26.06.18 - 26.07.25
라흰갤러리 @laheen_gallery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천미진(b.1979)
색이 접히는 자리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세잔은 빛에 따라 변하는 색을 그리기보다 사물의 본질적 색을 분할해 여러 겹으로 얇게 덧칠하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색채를 '재현'이 아니라 '구성'의 수단으로 삼아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이러한 접근은 천미진 작가의 색에 대한 철학과 닿아 있다. 그러나 천미진의 색채론은 한발 더 나아간다. 색이란 '구성'의 주체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유동적이며, 그 색을 관찰하는 감상자 또한 살아있기 때문에 감상하는 색 또한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아크릴을 얇게 펴바르고 지우고 또 쌓으며 만들어진 색은 시간을 담고 우리에게 부유하는 색으로 다가온다.
2024년 8월,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천미진의 개인전에서 나는 작가가 한국과 독일, 이탈리아를 오가며 축적해온 경계의 감각을 회화와 건축의 교차점에서 읽어낸 바 있다. 그때의 색은 내면과 외면의 경계, 초월의 순간을 담아내는 매체였고, 중첩된 색과 보색의 마주침은 관람자에게 일종의 초월적 체험을 건네는 장치였다.
이번 라흰갤러리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는 그로부터 다시 한 걸음 나아간 자리에 있다. 조은영 큐레이터의 전시글에 따르면, 작가가 천착해온 '접힘'은 표면의 굴곡이 아니라 색이 밀도와 거리의 감각으로 입체적 관계를 활성화하는 '상태의 전환'을 가리킨다. 형상이 구부러지는 사건이 아니라, 색이 표면을 초월해 공간의 차원으로 감지되기 시작하는 찰나를 포착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올린다. 소설 속 도시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 의미가 결정되며, 기억과 시간이 끊임없이 겹쳐 쓰여지는 '접힌 텍스트'로 그려진다.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도시들이 결국 하나의 베네치아가 여러 겹의 시선으로 펼쳐진 변주였듯, 천미진의 화면 또한 하나의 색이 여러 겹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시 쓰여진 결과다. 문학이 언어의 층위로 공간을 구축하듯, 천미진은 색의 층위로 공간을 구축한다.
또 한편으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붉은 사막>(1964)이 겹쳐 떠오른다. 안토니오니는 산업화된 풍경 속 인물의 불안을 채도와 색면 그 자체로 표현했다. 그에게 색은 배경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을 조형하는 주체였다. 천미진이 독일에서 익힌 건축적 구조 감각과 이탈리아에서 체득한 색과 빛의 교섭을 풀어내는 방식은, 안토니오니가 영화적 미장센으로 심리적 공간을 구축했던 태도와 닮아 있다.
조은영 큐레이터는 작가가 구조를 형상의 골격이 아니라 요소 간 관계를 조직하는 '조건'으로 파악한다고 짚는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에서 건축을 전공하며 쌓은 실무 경험에 근간을 둔다. 2024년 밀라노 설치작 《Morphorama》가 구조 자체의 운동성을 겨냥했다면, 이번 개인전은 그 구조적 감각에 색채와 회화의 논리를 결합해 평면 너머의 지각으로 확장한다. 라흰갤러리의 복층 구조와 보이드 공간은 이를 가장 적확하게 현시하는 무대다. 보이드 중앙의 대형 설치물은 지하와 1층의 회화와 조형물을 유기적으로 매개하며, 관람은 시점의 변화에 따라 색과 구조가 실시간으로 재구성되는 생성적 지각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마치 칼비노의 독자가 도시를 돌 때마다 새로운 층위를 발견하듯, 관람객은 갤러리를 오르내릴 때마다 색과 구조가 새로 접히고 펼쳐지는 또 하나의 도시를 경험하는 셈이다.
결국 천미진이 다루는 색이란 의도의 결과물이 아니라, 재료와 조건의 우발적 조응으로 빚어지는 잠정적 상태, 곧 색과 재료와 구조가 매 순간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한국과 유럽, 회화와 건축, 그리고 문학과 영화의 서사적 층위까지 가로지르며 경계 위에 서 있던 작가가 그 경계면의 동적인 변화를 마침내 실제 공간으로 풀어낸 자리, 이번 전시는 천미진의 작업이 도달한 뚜렷한 도약의 국면을 보여준다.
천미진(b.1979)은 홍익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예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적 구조 감각과 회화적 색채 언어를 결합한 최근작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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