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artist_ji.park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작가후원연대 2024년 <너이들> 단체전 1기 …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6.13 09:50
박지영 @artist_ji.park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작가후원연대 2024년 <너이들> 단체전 1기 작가이기도 합니다.
박지영 개인전
《Dedans Dehors》
2026.5.20~6.13, 수~토 12:00~18:00 (일~화 휴무)
TODA GALLERY @toda_gallery_cafe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박지영
껍데기의 고백과, 그 안팎의 서사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박지영의 《Dedans Dehors》 — 프랑스어로 '안과 밖' — 는 제목부터가 선언이다. 이 전시는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전시가 아니다. 안과 밖 사이에서 평생 진동해온 한 인간의 자전적 보고서다.
작가는 "왜 이렇게 신체에 천착하셨나요?"라는 질문에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답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육체에서 나오는 생각, 소리, 냄새는 껍데기 안에 담고 있다가 감출 수도, 드러낼 수도 있는데, 그것들을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노트에도 썼다. "이 세상에 던져진 육체는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축적된 하나의 껍데기처럼 존재한다." 이것은 허무의 표현이 아니다. 껍데기가 곧 아카이브라는 선언이다.
이 지점에서 이어령 박사가 떠오른다. 그는 말년 암 투병 중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껍데기를 가지고 살았다. 지식도 껍데기, 명예도 껍데기. 죽음 앞에서야 그 껍데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처음으로 들여다봤다." 《생명이 자본이다》에서 말한 '생명자본'의 핵심도 같은 질문이다. 몸이 담고 있는 기억, 감정, 관계의 총량이야말로 어떤 물질 자본보다 근본적이라는 통찰. 박지영의 껍데기론은 그것을 화면 위에서 실천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네 점의 대형 연작 〈그 가벼움과 무거움…〉은 압도적이다. 목탄과 흑연, 과슈로 완성된 이 얼굴들은 피부가 늘어지고 무너지고 다시 접힌다. 첫 번째는 평온하다. 네 번째로 갈수록 형태는 해체되어 인간의 얼굴이었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 전시장에서 얼굴이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이다. 나머지엔 얼굴이 없다.
작가는 말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펼치고, 속옷만 입은 채 혼자 내 몸을 눕혀 선을 따라 그었어요. 실패한 선까지도 저의 모습이에요." 재현이 아닌 직인(直印)의 행위다. 그러므로 이 작업들은 얼굴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존재의 물성을 기록한 탁본에 가깝다.
〈머리 없는, 생각 없는, 껍데기 자화상〉에서 시선은 전복된다. 어두운 바탕 위에 인체들이 흰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머리가 잘려 있다. 작가는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남긴다'. 목탄을 쌓고 긁어내고 지워내는 과정에서, 형태는 화면으로부터 구출된다.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 지워내는 행위는 곧 나의 작업 방식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
가장 설치적인 축은 〈애나맬동선(코팅된 구리선)〉 연작이다. 흰 벽에 구리선으로 엮인 머리 없는 토르소들, 손들, 발들이 고정되어 있다. 조명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며, 실체와 그림자 양자가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가의 실제 신체 사이즈로 제작된 이 등신대 복사본은 내부가 비어 있다. 형태만 있고 살이 없다. 이 공허한 껍데기야말로 입체 버전의 껍데기 자화상이다.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통해 감정에도 층위가 있다는 것, 그 바닥을 처음 발견한 경험이 작업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작품 속 인체들이 겹겹이 쌓이고 무너지는 것은, 언어화되지 못한 채 응어리진 그 감정의 지층들 때문일 것이다.
작가노트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매일 나를 바라본다. 때로는 알 수 없고, 때로는 마주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예술 선언이 아니다. 인간 선언이다.
껍데기라고 불러도 좋다. 그 껍데기 안에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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