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단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gallery.0doc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7.05 02:32
채단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gallery.0doc
채단개인전 @dano_kunst
<몇 칸이나 들어갈까 CUBIC WORLD>
2026.7.4(토)~7.22(수) 수~토 pm2시~6시
AR 갤러리 @ar.creator.space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채단(b.1999)
알 속의 달력, 그리드 속의 풀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갤러리 문을 들어서면 흰 벽에 촘촘히 박힌 수백 개의 투명한 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한 것들이 규격의 선반 위에 도열한 광경에 나는 반사적으로 데미언 허스트의 약장을 떠올렸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정정해야 했다. 허스트가 기성 알약을 진열해 자본과 죽음을 냉소했다면, 이 젊은 작가는 자신이 벗어놓은 하루하루의 껍질을 손수 알 속에 다시 가두었다. 냉소가 아니라 고백이었고, 진열이 아니라 축적이었다.
주벽을 채운 〈186,〉은 올해 1월 1일부터 오프닝일인 7월 4일까지 186일 동안, 그날그날 작가가 '벗었다'고 생각한 껍질들 - 바나나와 복숭아와 레몬의 껍질, 나무젓가락 포장지, 라면 수프 봉지, 초코파이와 맥심 커피의 포장 - 을 메추리알 몰드로 뜬 투명 레진 속에 봉인한 작업이다. 알들은 월요일에서 시작하는 일곱 개의 열, 달력의 형태로 걸려 있다. 나는 처음에 그 배치에서 냉장고의 계란 트레이와 자판기를, 재고처럼 쌓인 나날들을 떠올렸지만 작가의 답은 더 서늘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태어나려는 자는 알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했지만, 채단은 이 성장의 신화를 뒤집는다. 하루하루 껍질을 벗으며 진전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여전히 알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 제목 끝의 쉼표가 마침표가 될 수 없는 이유이며, 187번째 알은 오늘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레진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표들이다. 어린 시절 던지고 놀던 유리구슬 같기도, 알록달록한 알약 같기도 한 그것들은 놀이처럼 스며들어 끝내 벗어날 수 없게 되는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라는 알이다. 젊은 작가의 개인적 불안에서 출발한 작업이 감상자에게는 문명 비평의 고발장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가벽 틈에 살구빛 실리콘 덩어리들을 쟁여 넣은 〈한 줄이 되면 터져요〉는 사람의 피부를 닮은 물컹한 촉감으로 미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네모난 몰드에 눌려 네모가 되어버린 살, 그리드에 맞춰 규격화된 채 벽과 벽 사이에 재고처럼 쟁여진 우리의 몸이다. 한 줄이 완성되면 터져 사라지는 테트리스의 역설은 규격에 맞춰 사는 삶의 역설이기도 하다. 전시 마지막 날 가벽이 열리고 살덩이들이 쏟아지는 퍼포먼스로 완성된다면, 이 작품의 서사는 비로소 한 사이클을 완주할 것이다.
〈GRGR〉 연작에서 작가는 체의 망을 캔버스에 깔고 그림을 그린 뒤 뜯어내 격자의 흔적을 남겼다. 체를 쳐서(채) 단절시킨다(단) - 이름이 곧 기법이 된 셈이다. 그리드(Grid)와 그래스(Grass)를 줄인 제목처럼, 죽은 풀과 새로 자라는 풀, 삶과 죽음의 순환마저 그리드 안에서 일어난다. 아파트의 창, 도시의 블록, 엑셀의 셀 - 자연조차 네모 안에서만 자라도록 허락된 도시에서 풀들은 경계를 따라가다가도 이내 선을 넘고, 캔버스들이 벽 위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배치는 그리드와 생명이 밀고 당기는 협상의 지도가 된다.
검은 정방형 패널 연작 〈알 혹은 터널〉의 시점은 알의 안쪽이다. 깨진 틈으로 내다본 바깥은 장밋빛이 아니라 여전히 어둡고, 매끈한 검은 표면에 비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얼굴이다. 알의 안팎을 가르는 것은 껍질이 아니라 나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거울이다.
전시 제목 〈몇 칸이나 들어갈까〉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꽉꽉 눌러 담자는 우리 시대의 강령에 단 의구심의 각주다. 냉소적인 듯하지만 실은 다정한 반문이다. 2023년 첫 개인전 《알껍질파쇄기》에서 '깨고 나감'을 사운드 설치로 다뤘던 작가는 3년 만에 '깨고 나가도 여전히 갇혀 있음'의 서사로 한 겹 더 깊어졌다. 조소를 전공한 손으로 레진, 실리콘, 회화, 사운드를 오가며 하나의 질문을 집요하게 변주하는 태도가 작가의 근력이다.
매일 껍질을 벗는다고 믿는 우리는 저마다의 186번째 알 속에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투명한 레진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 하는 일이다. 알 속에서라도 달력을 만드는 사람은 언젠가 그 어느 칸에서 껍질 바깥의 빛을 만날 것이다. 187번째 알이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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