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심층전시리뷰] 윤세열 개인전 «도시유희 都市遊戲» 갤러리로윤
8월 11일, 서울 용산 갤러리로윤에서 열리고 있는 윤세열 개인전 «도시유희»의 전시장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그림 안팎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그 인터뷰와 현장의 인상을 엮은 심층 리뷰다.
갤러리로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몸을 붙잡은 것은 색이었다. 오리나무 열매로 삭힌 비단의
누런 바탕은 방금 그린 그림이 아니라 오래전에 발견된 지도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위에 얹힌 것은 지극히
동시대적인 서울의 스카이라인이다. 시간이 어긋나 있다는 느낌 - 고문서의
피부에 오늘의 뉴스를 적어 넣은 듯한 그 이물감이 첫 만남의 인상이었다. 화면은 조용하다. 빽빽한 아파트와 건물들이 그려져 있는데도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밀도가
침묵으로 번역되는 이 역설이야말로 «도시유희»의 첫인상이었다.
화면 속 숨은그림찾기 — 오리, 번지점프, 그리고 뗏목
한 걸음 물러나 화면을 읽는다. 병풍처럼 둘러선 능선이 화면 상단을 가로지르고, 그 아래로 도시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시점은 공중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부감(俯瞰)이며, 화면
하단에는 강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으로 남아 있다.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건물의 실루엣을 채운 무수한 세필들 사이로, 강 위에는 오리 한
마리가 슬쩍 앉아 있고, 공사 중인 빌딩에 타워크레인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의 형상이 있다. 한강 위로는 느닷없이 뗏목 하나가 떠 있고, 화면 한켠에는 '도라지'라는 글자가 삐죽 새겨져 있다. 읽히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문자였던 흔적들도 곳곳에 있다.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술래가 되어 화면 속을 헤맨다.
"«도시유희»라는 제목은 그림의 내용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우리의 눈동자에 먼저 걸리는 술어였다." — 이상민
세필은 어디서 왔는가 — 서원, 사서, 그리고 딸의 말들
윤세열의 재료 선택은 결코 기술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비단은 본래 화조화(花鳥畵)와 초상, 궁중
회화에 쓰이던 격조 높은 매체였다. 그런 비단 위에 콘크리트와 유리로 뒤덮인 아파트 숲을 얹는 행위는
일종의 전복이다. 고귀한 바탕이 세속의 풍경을 떠받치는 순간, 도시는
갑자기 완상(玩賞)의 대상으로 격상되고 동시에 비단은 아파트
시세와 재개발의 서사 속으로 끌려 내려온다. 오리나무 열매를 달인 물을 흰 비단에 앞뒤로 예닐곱 차례씩
발라야 비로소 저 누런 고아(古雅)한 빛이 올라온다. 서울이 재건축 공고 한 장으로 하룻밤 사이에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속도와, 열매를
우려 색을 앉히는 이 더딘 시간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실제로 강화도의 한 미술관에 걸렸을 때는 "이 그림은 언제 그린 것이냐"는 문의를 받았다고
한다. 방금 완성한 그림이 오래전 발굴된 유물로 오인되는 순간, 가장
느린 매체가 가장 빠른 도시를 붙잡아 두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이미 절반쯤 성공한 셈이다.
그 세필의 기원을 작가에게 직접 들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 시절, 학비 지원을 받으려면 서원에 들어가 사서(四書)를 통째로 암송해야 했다. 속이 빈 갈대로 만든 붓끝처럼 머금는 먹의
양조차 지극히 적은, 볼펜과 다를 바 없는 가는 붓으로 외운 구절을 되짚어 쓰던 그 손이 그대로 화폭
위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촘촘히 쌓인 세필 사이에는 뜻밖의 글자들이 섞여 있다. 입 구(口) 안에 사람
인(人)을 가두면 가둘 수(囚)가 되는데, 그 형상을 아파트 창문 모양으로 슬쩍 그려 넣기도 하고,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싶을 때는 귀 이(耳)자를 건물의 윤곽으로 앉혀 놓기도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가사를
적어 넣기도 하고, 딸이 배고프다 보챌 때 무심코 써넣은 '배고파', 놀아달라 조르던 '놀아줘' 같은
지극히 사적인 말들도 섞여 있다. 도시라는 거대한 텍스트 밑에는 이렇게 한 개인의 지루함과 절박함, 육아의 소음이 팔림프세스트처럼 겹쳐 쌓여 있다. 작가는 사람이 무언가를
볼 때 본능적으로 눈·코·입을 찾으려 하듯, 관객도 화면 속에서 글자를 찾아내려는 본능이 작동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술래잡기는
그러니까 관객만의 몫이 아니라 애초에 작가가 걸어놓은 판이었다.
«기발한 경계»에서 «도시유희»로 — 촛불과 주사위가 예고한 것
이 지점에서 «기발한 경계»와의 궤적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달 전, 윤세열은 이목화랑에서 «기발한 경계»라는 전혀 다른 결의 전시를 열었다. 도시산수를 벗어나 촛불, 도마뱀,
추파춥스, 나방, 개구리 같은 작은 소품들을
그린 자리였다. 작가 자신의 설명은 필자의 짐작보다 훨씬 담백했다.
"산수가 꼭 풍경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이상향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정물도 산수의 확장이니까요." — 윤세열
그에게 «기발한 경계»는 산수의 이탈이 아니라
산수 개념 자체를 넓혀보는 실험이었다. 꺼진 촛불과 던져진 주사위 같은 사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촛불을 불기 전과 불고 난 후 - 그 사소한 행위 하나로 화면의
상황 전체가 뒤바뀐다. 그리고 그 사소함이 어쩌면 우리가 산수라 믿어온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깨뜨릴 수
있다는 것. 던져서 노는 주사위 역시 우연과 놀이의 상징이었다. «기발한
경계»는 그러니까 «도시유희»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유희의 씨앗은 이미 그때 심어져 있었다.
격수隔水의 미학은 낡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2012년 윤세열의 이전 작업을 두고 이렇게 썼다. 그는 이 화면이 "산수화적인 분위기"를 지녔다고 짚었고, 강을 사이에 둔 도시의 배치를 "격수隔水와도 같은 맥락"이라 명명했다. 문인화 전통에서 물은 속세와 관조자 사이를 갈라놓는 장치였고, 그
거리감이야말로 선비가 산수를 완상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독법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격수의 미학은 15년 여 흐른 지금 이제 조금 낡았다. 근엄한 문인이 강 저편의 세속을
관조하며 거리를 두던 시대의 감수성이지, 스스로 '유희'라는 제목을 내건 2026년의 화면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벅차다.
작가는 이번 신작 속 오리 한 마리를 두고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서 있는 경계가
어디냐에 따라 무엇이 산수로 보이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옛사람에게는 강과 산이 산수였다면, 오늘의 우리에게는 강변북로와 고층 빌딩이 곧 산수다. 시대가 바뀌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산수도 바뀐다 - 이것이 그가
말하는 '경계'의 본뜻이었다.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 문화의 근원을 노동이 아니라 놀이에서 찾았듯, 규칙이 있고 경계가 있고 그 안에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이 놀이라면, 윤세열의
도시는 더 이상 강 건너에서 조용히 완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걸어 들어가 문자를 찾고 규칙을 발견해야 하는 놀이판이다. 관조에서 참여로, 거리 두기에서 뛰어들기로 - 이것이 «도시유희»가 «격수»의 미학 위에 새로 써넣은 존재론이다.
흥미로운 후일담이 하나 있다. 박사과정 시절, 풍수지리를
전공한 지도교수가 그에게 풍수로 논문을 써보라 권했다. 우리나라 풍수는 중국의 그것과 달리, 땅에 이미 있는 것을 헤아려 허한 곳은 메우고 넘치는 곳은 덜어내는 방식이다.
진경산수화를 그릴 때 화가가 눈앞의 풍경에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 '진경'을 완성하는 방식과 이 풍수의 논리가 닮았다는 이야기였다. 논문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 발상은 작가의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그는 63빌딩과 롯데타워 123층에
직접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곤 했다는데, 정작 화폭에 옮긴 풍경은 어느 한 곳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익숙한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 지어낸 도시다. 우리 눈에 익숙하도록 빼고 채운, 그러니까 그 자신이 하나의 풍수를 놓듯 완성한 산수인 셈이다.
우리 시대의 산수는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산수는 무엇인가 — 그 질문에서 이 작업은 시작됐습니다." — 윤세열
산수화는 원래 지도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누군가의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리다가, 그 길에 멋진 바위와 나무를 더하고, 여기쯤 복숭아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슬쩍 얹으면서 관념산수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 길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고층 아파트와 공사 현장, 고속도로 - 어쩌면 이것들이야말로 이 시대가 은밀히 욕망하는 이상향이 아니겠느냐고 그는 되묻는다. «도시유희»는 그러니까 서울의 기록이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이 도시를 소요하며 채집하듯 그려낸다는 점에서, 필자는 자연스레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떠올렸다.
1934년, 소설가 구보는 하루 종일 경성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을
무심한 듯 예민하게 채집한다. 목적지 없이 걷는 자, 그러나
누구보다 도시를 정확히 관찰하는 자 - 윤세열의 붓끝이 서울을 세필로 더듬어 가는 방식은 구보의 산책과
닮아 있었다. 다만 구보의 문장이 활자로 남았다면, 윤세열의
산책은 대부분 읽을 수 없는 문자로 남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도시라는 문장에 찍힌 쉼표
수년간 미술을 수집해 온 사람으로서 필자가 눈여겨보는 것은 작가의 궤적이 그리는 곡선이다. 그는
이목화랑에서 격년으로 개인전을 열어온 작가다. 근엄한 도시산수에서 «기발한
경계»의 정물적 일탈로, 다시 «도시유희»의 거시적 놀이로 - 이
왕복운동은 후퇴가 아니라 축적이다. 작은 경계들을 충분히 탐사한 손이 돌아와 도시라는 거대한 경계를
다시 그릴 때, 그 붓질에는 이전에 없던 여유와 리듬이 실린다. 컬렉터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순환적 실험을 견뎌내는 작가야말로 장기적으로 신뢰할 만한 작가다. 유행을 쫓아 소재를
바꾸는 것과, 자기 세계 안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매번 새로운 진폭을 얻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문득 이 그림들이 문장 속의 쉼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표도 느낌표도 아닌, 숨 한 번 고르고 다시 읽어나가라는 쉼표.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도시라는 문장 한복판에, 윤세열은 오리나무
빛깔의 쉼표 하나를 슬쩍 찍어 넣었다. 관객에게 권하고 싶은 감상법은 그래서 하나다. «도시유희» 앞에서는 근엄해지지 말 것. 화면에 코를 박고 숨은 오리와 글자를 찾아보고, 어느 골목이 자신이
아는 서울인지 짚어보고, 강의 텅 빈 자리에 스스로의 불안과 안도를 번갈아 얹어볼 것. 그렇게 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이 비단 위에서 함께 유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먹빛으로 가라앉은 서울이, 결국 우리를 초대해 함께 노는 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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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윤세열 개인전 «도시유희 都市遊戲» | 갤러리로윤 | 2026. 8. 3(월) – 9. 3(목)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86-3 와이빌딩 3층 |
@gallery_royoon
작가 소개
윤세열은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비단에 먹을 쓰고 오리나무 열매로 물들인 노란 바탕 위에, 섬세한 세필과 우연히 스며든 문자를 겹쳐 쌓아 '도시산수화'라는 독자적 회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