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후기] 김태형 개인전 — 아크코어 관악 전시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12 18:33
[전시후기] 김태형 개인전
— 아크코어 관악 전시
작가 : 김태형 @artist_kimtaehyung76
전시명 : 어질러진 안부인사 (Love Notes from a Messy Life)
일정 : 2026. 10. 8 ~ 10. 22 (수 휴관)
장소 : 아크코어 @arkcore_official
(서울시 관악구 양녕로24 2층)
관악구 아크코어에서 열리고 있는 김태형 작가의 개인전 《어질러진 안부인사》에 다녀왔습니다. 전시장 한편은 작가의 실제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장난감과 드로잉, 자료가 뒤섞인 이 어수선한 방이 작가의 머릿속 풍경이자, 이번 전시 전체를 이해하는 입구인 셈입니다.
작가는 원래 작가의 꿈을 꾸다 여러 사정으로 접고, 대학원 수료 후 10여 년간 일러스트레이터와 입시미술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상할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던 시기, 아이가 태어나면서 주 양육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소재는 자연스럽게 육아의 일상에서 나왔습니다. 2021년 《집착 혹은 애착》이라는 전시에서 다뤘던, 아이가 더는 찾지 않는 애착 장난감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이어집니다. 그때 만든 오브제 몇 점도 이번 전시에 다시 등장합니다.
기법도 흥미롭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 안료 대신 아크릴 잉크를 씁니다. 장난감 특유의 반짝이는 원색을 전통 안료로는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업의 진행 방식 자체는 선으로 형상을 다 그린 뒤 옅게 채색을 올리는 수묵담채의 순서를 그대로 따릅니다. 재료는 현대적이지만 몸에 밴 화법은 전통적인 셈입니다. 한편 리넨에 피그먼트 라이너 펜으로 그린 드로잉 작업들은, 몸이 안 좋아져 이젤 앞에 서 있기 힘들어졌을 때 바닥에 눕혀놓고도 그릴 수 있는 방식을 찾다가 나온 결과물입니다.
전시 제목에 담긴 '놀이'는 이중의 의미를 가집니다. 작가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아이가 장난감을 흩뿌리듯 아크릴 잉크를 먼저 뿌립니다. 마르고 나면 그 얼룩을 한참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장면을 상상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비로소 장난감이 어질러진 구체적인 장면을 정교하게 그려 넣습니다. 관객들은 흔히 거친 추상 드로잉이 마지막에 즉흥적으로 더해졌을 거라 짐작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아이가 놀았던 흔적과 작가 자신이 캔버스 위에서 놀았던 흔적, 이 두 가지 놀이가 포개져 한 장면이 됩니다.
작가에게 '놀이'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몰입은 하지만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오히려 복잡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여가가 아니라 인간 문화를 만들어온 가장 진지한 활동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정한 규칙 안에서 몰입하는 행위가 오히려 삶의 긴장과 의미를 다루는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김태형 작가가 말하는 "즐겁지만은 않지만 즐거운 것"으로서의 놀이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작가는 또 하나, 옛 문인화가들이 말한 '이형사신(以形寫神)' — 사물의 형상을 빌려 마음을 드러낸다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이 말은 4세기 중국 화가 고개지가 인물화를 논하며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형상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그림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작가는 눈앞에 흩어진 장난감 더미를 그리는 자신의 작업이, 옛 화가들이 산과 강을 직접 보고 그렸던 사경산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풍경이 산수가 아니라 거실 바닥일 뿐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서 따옴표로 강조한 단어는 '발견'입니다. 아이의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소재가 일상 속에서 눈에 띄는 과정, 그리고 화면 구석구석에 숨겨둔 오브제를 관객이 직접 찾아내는 과정. 두 개의 발견이 이 전시를 완성합니다.
글: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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