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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루시드로잉 작가 @imlucydrawing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1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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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루시드로잉 작가 @imlucydrawing 루시드로잉 개인전 《우리 동네의 기록》 2026. 10. 1 – 10. 31 갤러리로윤 @gallery_royoon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루시드로잉 사람이 없는 그림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파란 함석지붕, 처마 밑 빨랫줄, 툇마루 옆에 키 순서대로 늘어선 장독들. 처음 보는 그림인데 처음 보는 집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 모래내 개천가에서 자랐다. 비 오는 밤이면 함석지붕이 북처럼 울었고, 볕 좋은 날이면 빨랫줄에 이불이 깃발처럼 걸렸다. 그 동네는 이제 없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 느낀 것은 감상이라기보다 귀향에 가까웠다. 루시드로잉의 화면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묘하게 시끄럽다. 문 옆의 플라스틱 의자, 처마에 걸린 수건, 마당의 물뿌리개, 개집 앞에 엎드린 강아지. 기호학자 퍼스의 말로 하면 이것들은 모두 '지표', 곧 누군가 여기 살고 있다는 흔적이다. 인물 대신 인물이 남긴 자국을 보여줄 때 관람자는 그 빈자리에 자기 기억 속 얼굴을 채워 넣는다. 내게 그 얼굴은 모래내의 이웃들이다. 텅 빈 자리가 곧 관객의 자리다.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잎 하나, 함석의 골 하나까지 아주 짧은 선과 작은 점의 반복이다. 작가는 아크릴 잉크를 담은 펜을 직접 만들어 그린다. 나는 여기서 미분과 적분을 본다. 동네의 시간을 짧은 선으로 잘게 쪼갠 뒤 화면 위에 겹겹이 쌓는다. 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수만 개가 쌓이면 단풍 숲이 되고 한 동네의 계절이 된다. 기억도 그렇다. 빗소리, 저녁 햇빛, 평상의 나무결 같은 작은 조각들이 쌓여 '그 시절'이 된다. 〈나의 작은 정원〉의 둥근 덤불은 누군가의 반복된 손질이 만든 형태이고, 작가는 그것을 다시 반복된 펜 선으로 옮긴다. 정원사의 손과 화가의 손이 같은 박자로 움직인다. 이번 신작들에서 집은 화면 아래 한 귀퉁이에 낮게 앉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숲이다. 2024년 작 〈우리동네 골목길 작은가게〉에서 가게가 주인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주객이 뒤집혔다. 나는 이것을 '기록'에서 '기억'으로의 이동으로 읽는다. 숲은 풍경이라기보다 세월의 부피다. 집이 작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멀리 왔기 때문이다. 〈장독대 가득한 노란숲〉에서는 집보다 장독이 더 많다. 숲이 세월의 부피라면 장독은 세월의 맛이다. 가장 오래 머문 그림은 〈가을숲이 우거진 마당에서〉다. 붉은 단풍 아래 파란 함석지붕 집, 줄지어 선 장독, 돗자리에 널린 고추. 차가운 파란 지붕과 뜨거운 단풍의 보색 대비가 기억의 몽상에 맑은 공기를 불어넣는다. 모래내의 함석지붕이 바로 저 파란색이었다. 〈머리하는 날〉의 '백합미용'은 결이 다르다. 집이 사적 공간이라면 동네 미용실은 공론장이다. 누구네 혼사와 시장 물가가 오가던 곳. 작가는 그 소리를 그리지 않고 노란 벤치 하나로 들려준다. 근대건축을 그린 '우리의 기록' 연작도 함께 볼 만하다. 작가는 오래된 건물의 정면을 사람의 얼굴처럼 마주하고, 그 건물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되살려 그린다. 재개발의 속도 속에서 함석지붕과 장독대와 구멍가게는 가장 먼저 사라진다.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그 '가치 없음'에 가장 많은 선을 바친다. 호퍼의 빈 공간이 고독을 말한다면 루시드로잉의 빈 공간은 온기를 말한다. 사람이 막 떠났거나 곧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부재'가 아니라 '부재 중'. 동네는 사라졌어도 그 동네에서 자란 사람은 아직 여기 있다. 짧은 선은 시간을 쪼개고, 쌓인 선은 기억을 짓는다. 모래내의 함석지붕은 사라졌지만, 루시드로잉의 숲 아래에서 나는 다시 그 집 마당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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