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록] 카이라김 작가 @kyrakim_artist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09 11:17
[취향의 기록] 카이라김 작가
@kyrakim_artist
카이라김 개인전
《감정의 지층 Strata of Emotion》
2026.10.06–10.11 | 11:20–18:00
웨이브 아트 스페이스 @wave_artspace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카이라김(b.1972)
깎아야 보이는 시간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결정이 미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정이 과거를 드러낸다.
옻칠을 쌓아 칼로 파내는 조칠(彫漆)에 척서(剔犀)와 척채(剔彩)가 있다. 척서는 붉은 옻과 검은 옻을 번갈아 쌓고 V자 홈을 파서, 비탈면에 모든 층을 줄무늬로 한꺼번에 드러낸다. 척채는 여러 빛깔의 옻을 층층이 쌓고, 원하는 색이 놓인 깊이까지만 칼을 내린다. 칼을 어디서 멈추느냐가 떠오를 색을 정한다. 쌓는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깎아야 비로소 보인다.
카이라김의 화면 앞에서 척채를 떠올렸다. 아크릴을 붓고, 펴고, 말리기를 여덟아홉 번. 마지막 한 겹, 흰색이거나 연둣빛이거나 코발트인 그 한 겹이 모든 시간을 덮는다. 그다음이 조각도다. 칼의 깊이에 따라 노랑 안에 주황, 주황 안에 보라, 보라 안에 청록이 고개를 든다. 등고선 같고 지층 같다.
작가는 조각 이전의 화면을 "아직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의 장"이라 부른다.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상태가 겹친 채로 있다가, 관측되는 순간 하나로 수렴한다. 이 캔버스에서 관측자는 조각도다. 칼날이 지나가는 순간 겹쳐 있던 가능성은 하나의 형상이 된다.
그러나 그 형상은 칼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과 감정이 만든 '필연적 구조'다. 도토리 속에 참나무가 가능태로 들어 있다던 아리스토텔레스, 형상은 이미 대리석 안에 있다던 미켈란젤로가 겹친다. 다만 카이라김은 깎을 돌을 스스로 쌓는다. 칼끝이 찾아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이다.
키르케고르는 삶은 뒤를 돌아볼 때 이해되지만 앞을 향해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표를 내는 날, 이별을 말하는 날, 처음 붓을 드는 날. 결단의 칼날이 지나간 단면에서야 우리 안에 어떤 색이 얼마나 두껍게 쌓여 있었는지를 본다.
옆으로 비켜서면 골짜기가 생기고, 멀리서는 자개처럼, 가까이서는 단청과 한복의 색으로 보인다. 세로줄 작품 앞에서는 스티브 라이히의 〈피아노 페이즈〉가 들렸다. 같은 지층을 지나는 줄들이 칼의 깊이와 폭에 따라 저마다 다른 리듬을 낸다. 반복인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순환의 결 2〉에서 깎여 나간 조각들은 버려지지 않고 다시 엮여 서로를 붙잡는다. 상처가 화면을 지탱하는 결이 된다.
작가는 노트를 이렇게 맺는다. "결국 나의 작업은 색의 중첩, 조각, 그리고 엮임을 통해 가능성이 어떻게 하나의 형태로 드러나고, 다시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세 단어를 한 사람의 생애로 읽는다. 중첩은 이름 없이 쌓여 온 시간, 조각은 선택하고 떠나고 잃는 결정의 순간, 엮임은 떨어져 나간 조각이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에 기대어 새 결을 짓는 그 이후의 삶이다. 그래서 이 그림 앞의 관객은 저마다 자기 지층의 단면을 본다. 사진이 절반밖에 말해주지 않는 그림, 직관해야 할 이유다.
홍익대 섬유미술 전공, LG에서 25년 넘게 '표면'을 만들던 디자이너. 2024년 조각도를 든 그는 이제 표면 아래를 판다. 회사를 나서던 결정의 칼날 이후에야, 쌓아둔 시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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