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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각자의 궤도로 완전한 것 — 킴콜린 작가의 〈Eccentricities Ⅰ〉 작품 감상문    네이버 구글 블로그포스팅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을 그리더라도,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고유한 궤도가 된다. 킴콜린 작가의 〈Eccentricities Ⅰ〉을 통해 들여다본 편심의 감각.
아트커넥터   승인 2026.07.18 09:45  |  최종 수정 2026.07.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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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평창동, 키미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킴콜린 작가의 개인전 《The Unstill Life Story Tour》에서 발길이 멈춘 곳은 〈Eccentricities Ⅰ(121×181.4cm, 디지털 프린트, 2026) 앞이었다. 검은 바탕에 원형 컬러 도트가 흩뿌려진 커튼천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민트빛 인체 형상의 화병에는 주황빛 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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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centricities Ⅰ(일부), 121×181.4cm, 디지털 프린트, 2026 

곁에는 흰 도자기 장식물, 파란 양초, 오렌지빛 프릴 리본이 마치 각자의 언어로 대화하듯 놓여 있고, 화면 상단 한 귀퉁이엔 뜻밖에도 신문지 활자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하단 우측, 평면처럼 보이는 주황색 원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난감 공이다. 화려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이질적이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이 정교한 균형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작가를 다시 찾았다.

작업의 출발점을 묻자 킴콜린 작가는 뜻밖에도 선불교의 '엔소(円相)'를 꺼냈다. 엔소는 오직 한 호흡, 한 붓질로 원을 완성해야 하며 다시 덧그리거나 고칠 수 없는 수행을 말한다. 완벽함보다 그 순간의 마음 상태 자체를 드러내는 데 가까운 수행인데, 그는 이 이야기를 꺼내며 "나는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을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완전한 원에서 비켜난 형태, 타원(oval)에 마음을 뺏긴 그는 타원처럼 완전하지 않은 사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그에게 종종 "네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니"라고 묻곤 했는데, 그 질문은 오래도록 그의 뇌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Eccentricity'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 일상어로는 '기이함, 엉뚱함'을 뜻하지만, 수학과 천문학에서는 타원이 원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나타내는 변수값, 곧 편심률을 가리킨다. 결핍처럼 들리던 단어가 하나의 좌표로 다시 읽히는 순간이었다.

화면 상단에 언뜻 비치는 신문지는 애초 의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지 않은 작품을 벽에 기대두려다 카메라가 뒤로 밀려 떨어졌고, 다시 세팅을 마쳤을 때 뒤편의 신문지가 그대로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을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이거다. 이제 됐다. 완성이다." 계획에 없던 균열이 오히려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이 고백은, 편심이라는 개념을 실제 제작 과정 안에서 다시 한번 증명하는 순간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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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entricities Ⅰ, 121×181.4cm, 디지털 프린트, 2026       

그가 사물을 모으는 방식은 설계도를 따르는 쪽과는 거리가 멀다. 벼룩시장과 꽃시장을 몇 바퀴씩 돌며, 이름조차 정확히 모르는 자투리 천과 부자재를 사 모은다. 화면 속 프릴 장식도 그렇게 얻은 것이다. 어떤 상인은 그를 슬슬 피했고, 어떤 상인은 오히려 어울릴 만한 천을 골라주었다고 한다. 손에 잡히는 것부터 시작해 나중에야 이야기가 형성되는 이 방식을, 그는 사물들을 이어 붙일 하나의 촉매, 대개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했다.

이런 태도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브리콜라주(bricolage)를 떠올리게 한다. 설계와 목적을 갖고 재료를 조달하는 엔지니어와 달리, 손에 닿는 자투리 재료를 그때그때 짜맞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손재주꾼, 브리콜뢰르의 방식이다.

킴콜린 작가의 사물들은 저마다 원래의 용도와 기원을 지니고 있었다. 주자재가 아닌 부자재, 누군가에게는 쓸모를 다한 물건들. 그는 그 기원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로 새로운 관계 속에 배치한다.

물건의 파편적인 것을 찾아 모아서 결국 그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조각들이 만나 이루는 잠정적 전체로서의 정체성.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란 그의 이력과도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처음에 마주한 엔소, 그리고 편심이라는 단어는 결국 같은 질문의 다른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인류는 천체가 반드시 완벽한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고 믿었고, 원은 결함 없는 도형이자 신성한 질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케플러는 행성이 원이 아니라 타원 궤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이 오래된 믿음을 깨뜨렸다. 편심률은 결함의 지표가 아니라 그 궤도가 얼마나 고유한가를 알려주는 수치일 뿐이며, 편심이 큰 궤도라 해도 태양 주위를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돈다. 다른 형태로 지속될 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킴콜린 작가는 대화의 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은 각자가 서로 다르게 살면서도 그 안에는 분명 어떤 질서가 있다고 믿는다고. 누군가 정한 규칙은 아니지만, 그 암묵적인 질서 안에서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화면 속 사물들이 저마다의 기원과 색을 간직한 채로도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완벽한 중심으로 수렴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는 것들끼리 나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나 역시 오랫동안 하나의 완전한 궤도를 그려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왔다. 중국어를 전공했지만 증권업에서 일해왔고, 미술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시 관람을 즐기고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도 어쩌면 편심이 큰 궤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 앞에서 나는 그 편차가 결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값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한 원을 그리지 못했다는 자책 대신, 내가 그려온 타원의 편심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킴콜린 작가의 무대가 조용히 건네는 초대장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https://www.instagram.com/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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