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흔적의 결 — 알렉스 김 작가의 <Mindful Sketches> 작품 감상문
갤러리크레인 바닥에 종이띠들이 산맥처럼 접혀 있다. 사탕수수 종이로
만든 이 스트립들은 펼치면 커지고 접으면 손바닥만 해진다. 표면에는 가는 선들, 얼룩진 원, 반복된 낙서 같은 흔적들이 빼곡하다. 다원과의 2인전 《TRACE
BELOW》에 놓인 알렉스 김의 〈Mindful Sketches〉(종이 스트립, 가변 설치, 2024–2026)다. 제작 연도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걸쳐 있다는 표기부터가, 이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로만 오팔카라고 폴란드 작가가 있는데, 그분이 30대 중반부터 일생 프로젝트를 시작했거든요." 작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숫자를 하나씩 적어가며 캔버스가 점점 하얘지도록 만든 오팔카의 평생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이은 말이 반전이었다. "제 작업을 결과물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하면 지속 가능성이 저한테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았어요." 평생을 건 기록이라는 무거운 틀을, 그는 완성도가 아니라 "안 하면 오히려 찜찜한" 습관의 형태로 가볍게 바꿔 놓았다. 그에게는 매일 그리는 드로잉 자체가 결과물이지, 무언가로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Mindful Sketches, 종이 스트립, 가변 설치, 2024–2026
제작 방식을 들으면 그 가벼움의 정체가 더 선명해진다. 그는 종이 양면에 각각 다른 이미지를 그린 뒤,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 빛을 투과시켜 한 장으로 촬영한다. "제가 한쪽 면을 작업할 때는 그 이미지에 대한 컨트롤이 저한테 있는데, 뒷면과는 일부러 연결고리를 잡지 않아서 합쳤을 때 생기는 이미지가 재밌어요." 예측을 배제한 자리에서 우연이 겹친다. 이렇게 캡처된 이미지들을 이어 붙이면 애니메이션이 되는데, 매끄럽게 흐르기보다 자꾸 끊긴다. "저희 의식의 흐름이랑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사고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요." 재료 선택도 같은 결을 따른다. 사탕수수 종이는 식물의 잔여물로 만들어지고, 100% 자연 분해된다. 접으면 작아지고 물성도 가벼워 보관과 아카이빙에도 유리하다 — 남기고 싶은 방식과 남길 수 있는 조건이 영리하게 일치한 셈이다.
이 작업을 관통하는 태도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한 것은 나무껍질에 대한 그의 말이었다. "숲에 가서 나무 밑둥에 껍질들이 바닥에 떨어진 걸 보면 뭔가 짠한 마음이 들거든요. 화려하게 만개한 절정의 식물 모습보다,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볼 때 뭔가 짠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피그말리온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조각상이 생명을 얻는 순간을 꿈꿨다. 완성된 형상만이 사랑받고 살아 숨 쉴 자격을 얻는다는 이 오래된 믿음은, 지금도 예술을 완성도로 재는 잣대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알렉스 김이 마음을 두는 자리는 그 반대편, 형상이 완성된 다음에 벗겨져 바닥에 떨어진 것들이다.
Mindful Sketches, 종이 스트립, 가변 설치, 2024–2026
이형기의 시 「낙화」는 이 지점에서 그의 말을 정확히 받아 적은 것처럼 읽힌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저도 저의 어떤 존재감을 작가로서 남기고는 싶은데, 그 남기는 방식이 너무 꾸며진 모습이라기보다는 나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벗겨내는 껍질처럼, 저한테 되게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껍질은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고 떨어진다. 그 낙하야말로 나무가 계속 자라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강물은 어떤 목적지에도 도달하지 않으면서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흐름이 곧 의미이지, 흐름의 끝이 의미인 것이 아니다. 오팔카가 평생에 걸쳐 캔버스를 하얗게 만들어간 것도, 완성된 캔버스 한 장이 아니라 그 축적의 시간 전체가 작업이었다. 알렉스 김이 오팔카를 언급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강물의 논리로 다시 돌아온다. "안간힘을 써서 남겨지는 작업이 아니라,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그는 이 말을 다소 겸연쩍게 웃으며 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완성을 향한 조급함을 오래전에 내려놓은 사람의 여유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