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우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과 왕가위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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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6)

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M] 우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과 왕가위의 「화양연화」    네이버 구글

우산을 나눠 쓴 연인도, 좁은 복도에서 스친 이웃도 결국 서로를 보지 못했다. 123년의 시간을 건너, 파리와 홍콩이 던지는 같은 질문.
아트커넥터   승인 2026.07.13 14:28  |  최종 수정 2026.07.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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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빗소리가 세상의 소음을 지워버려서일까요, 아니면 우산이라는 작은 지붕 하나가 사람을 잠시나마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서일까요. 그런데 이 고요함이 늘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그 안에 말하지 못한 마음이 고여 있기도 하니까요.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1877, 바로 그 순간을 캔버스에 옮겼습니다.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입니다. 세로 212센티미터, 가로 276센티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그림 속에는 우산을 쓴 부르주아 남녀 한 쌍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크기가 실제 사람과 거의 같아서, 미술관에서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치 그들과 함께 파리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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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212.2 x 276.2cm, oil on canvas, 1877 (출처: 구글 아트앤컬처)

배경은 파리 북부 생라자르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입니다. 당시 파리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만 남작이 중세의 비좁은 골목과 낡은 건물을 모두 헐고 새로 세운 신도시였습니다. 반듯한 건물, 넓은 대로, 깔끔하게 깔린 포석까지, 그림 속 거리는 그야말로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카유보트는 이 정갈한 도시를 사진처럼 정밀하게 담아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로, 앞쪽 인물은 초점이 흐릿하게, 가운데 인물은 또렷하게, 뒤쪽으로 갈수록 다시 흐려지게 그려 마치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한 장면처럼 연출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우연한 스냅사진 같은 장면이 사실은 몇 달에 걸쳐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라는 점입니다. 중앙의 가로등이 화면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바닥의 지평선이 다시 그림을 넷으로 나누는 십자형 구도 위에, 소실점 두 개가 겹치는 이점 투시 화법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훗날 미술 교과서에 원근법의 대표적인 예시로 실린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토록 완벽하게 계산된 화면 속에서, 정작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심합니다. 우산을 쓴 남녀는 서로 팔짱을 끼고 있지만 눈은 각자 다른 곳을 향해 있고,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 역시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재촉할 뿐 서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정갈하고 세련된 신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낯선 이들 사이를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카유보트는 어쩌면 근대 도시가 준 것이 편리함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편리함 뒤에 자리한 익명의 고독을 함께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정서는 100여 년의 시간과 대륙을 건너, 뜻밖의 곳에서 다시 만납니다. 2000,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입니다. 1960년대 홍콩의 좁은 골목, 나란히 세 든 두 이웃 차우와 첸 부인은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은 자주 마주치지만, 좁은 복도에서 몸을 살짝 비켜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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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 (출처: IMDB)

대사는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언제나 표정과 거리,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으로 전달됩니다. 붉은 벽지 사이로 흐르는 느린 걸음, 서로를 향해 있지만 결코 닿지 않는 시선. 카유보트가 그린 우산 속 부부처럼, 차우와 첸 부인도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닿지 못합니다.

색채 역시 두 작품을 잇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파스텔 톤의 노랑과 핑크가 감도는 건물, 축축하게 젖어 반짝이는 회색 포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세련된 색감입니다. 「화양연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첸 부인이 입고 나오는 치파오는 장면마다 색과 무늬가 바뀌는데, 화려한 원단 아래 감춰진 것은 정작 말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두 작품 모두 표면은 아름답고 정갈하지만, 그 아래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마음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잘 차려입은 옷과 잘 정돈된 거리가, 오히려 인물들의 속마음을 더 깊이 감추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의 시선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서로 닮았습니다. 카유보트가 사진기의 아웃포커싱 효과를 회화에 끌어들였다면, 왕가위 감독 역시 인물의 뒷모습이나 벽 너머로 살짝 비치는 실루엣처럼, 정작 보고 싶은 것은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프레이밍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두 예술가 모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가릴 것인가'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 셈입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람은 왜 가장 가까이 있을 때조차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파리의 신도시든, 홍콩의 좁은 아파트든, 공간이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되어도 그 안의 마음까지 이어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잘 정돈된 공간일수록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산 속으로, 저마다의 방 안으로 더 깊숙이 숨어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카유보트는 평생 미혼으로 살았지만 11살 연하의 여인과 오랜 인연을 이어갔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모네와 르누아르 같은 동료 화가들을 후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는 화가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한참 뒤인 1950년대 미국에서야 재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어쩌면 이 그림의 정서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곁에 있어도 제대로 보아주지 않다가, 떠난 뒤에야 뒤늦게 그 존재를 알아차리는 일. 그림 속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카유보트 자신의 생애와도 겹쳐 보이는 이유입니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에서, 혹은 좁은 골목의 스침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놓치고 지나쳐 왔을까요. 카유보트와 왕가위, 123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예술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https://www.instagram.com/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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