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각자가 그리는 무대 — 다원 작가의 〈오라토리오〉 작품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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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각자가 그리는 무대 — 다원 작가의 〈오라토리오〉 작품 감상문    네이버 구글

만화가 명확해서 좋다던 작가는, 정작 가장 애매한 그림을 그렸다. 무대도 배우도 없는 텅 빈 화면 앞에서, 다원은 답 대신 질문을 걸어둔다.
아트커넥터   승인 2026.07.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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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크레인의 긴 흰 벽 한가운데, 가로 194센티미터의 캔버스가 걸려 있다. 화면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다. 왼쪽은 칠흑 같은 검정, 오른쪽은 거의 순백에 가까운 흰색. 그 경계 위에 구체 하나가 떠 있다. 멀리서 보면 달 같기도, 낯선 행성 같기도 한 이 구체는 흑과 백을 동시에 빨아들이며 소용돌이친다. 화면 아래로는 뾰족한 암석과 얼어붙은 지형이 펼쳐진다. 다원(Dawon)의 신작 〈오라토리오〉(잉크와 아크릴, 캔버스, 130.3×193.9cm, 2026). 알렉스 김과의 2인전 《TRACE BELOW》에 걸린 이 작품 앞에서, 다원과 나눈 대화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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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잉크와 아크릴, 캔버스, 130.3×193.9cm, 2026

"오라토리오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게 기도하는 공간에 대한 단어에서 나오는 말이더라고요." 다원은 제목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라토리오는 본래 기도실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와, 배우도 무대장치도 없이 합창과 독창만으로 진행되는 음악 장르로 굳어졌다. "듣는 사람이 자기 경험치를 갖다가 스테이지를 다 다른 모습으로 펼친다"는 이 '없음'에 다원은 주목했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말대로, 이 텅 빈 화면은 관람자 각자의 기도실이 되기를 바라며 그려졌다.

그런데 이 열린 공간을 만든 장본인은 정작 "명확한 게 좋다"고 말한다. 다원은 "만화가 명확해서 좋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정작 그가 그리는 장면은 하나같이 애매하다. 그 모순을 짚자 다원은 이렇게 답했다. "흑백 만화의 그 명쾌함 속에 여러 가지 레이어링을 넣어서, 한 장면을 봐도 여러 갈래로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명확함에서 시작해 의도적으로 애매함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이 작업의 방법론이었다. 화면의 좌우 비율도 정확히 반반이 아니다. "흰 게 조금 더 넓다"는 그의 말대로, 보는 사람에 따라 화면은 밝아지는 중일 수도, 어두워지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흑과 백 진영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 풍경의 출처를 묻자 다원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사정상 실제로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해, 사진과 영상으로 접한 인상적인 장면들을 흑백으로 지운 뒤 이어 붙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거기를 진짜 가서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걸 그린 것"이라는 말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속,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상상으로 지어낸 여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제작 과정도 비슷했다. 평소 종이나 한지를 쓰던 다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캔버스에 직접 새기듯 그렸고, 여러 브랜드의 그레이스톤 잉크를 겹겹이 올려 같은 검정도 미묘하게 다른 발색을 만들었다. "그림은 그리고 스트레칭하는 순간까지 모든 게 선택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는, 완결을 계속 미뤄야 하는 삶의 감각이 배어 있었다. "그게 사는 거랑 비슷한 게 있다"는 그의 말이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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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잉크와 아크릴, 캔버스, 130.3×193.9cm, 2026       

이 회화가 다루는 '정지된 순간'은 오래된 계보를 갖는다. 18세기 비평가 레싱은 《라오콘》에서, 조형예술이 다뤄야 할 최적의 순간은 사건의 전후를 관람자가 상상할 수 있는 '함축적 순간'이라 말했다. 다원이 "행위가 끝난 뒤가 아니라 뭔가 하기 직전의 표정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이 오래된 규범 안에 서 있다. 그러나 레싱의 순간이 하나의 정해진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다원은 관람자마다 다른 이야기로 흩어지기를 바란다. 여기서 움베르토 에코의 《열린 예술작품》이 더 정확히 들어맞는다. 에코는 유기적으로 완결된 형식이 해석자의 수만큼 다르게 완성될 수 있다고 썼다. 오라토리오는 곡의 구조 자체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듣는 각자의 마음속 무대는 전혀 다르다. 다원의 화면 역시 형식은 명확한 선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열린다는 점에서, 그의 방법론은 레싱과 에코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 열림이 공허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다원의 말 한마디에 있다. 그는 이 텅 빈 화면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굉장히 많이 차 있는 에너지"라고 표현했다. 이 감각은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을 떠올리게 한다. 특정 종파 없이 모든 종교의 기도를 위해 지어진 이 공간에서, 로스코는 서사 없는 색면만으로 방문자를 맞았고,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감상자 자신의 경험이라 믿었다. 배우도 무대도 없이 저마다의 기도를 완성하게 만드는 이 공간은, 오라토리오라는 단어의 가장 오래된 뜻으로 되돌아간다. 절망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신과 조용히 대면하도록 남겨두는 침묵이다.

오프닝은 축하와 안부 인사 소리로 소란했다. 그런데 이 화면 앞에서만큼은 잠시 말을 멈추고 감상에 집중했다. 누군가는 언덕 꼭대기에 선 사람처럼 한 발짝 물러서서, 누군가는 물가 구석에 숨은 사람처럼 바짝 다가서서 같은 구체, 같은 흑과 백을 보고 있었다. 같은 화면을 보면서도 저마다 전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말보다 더 분명하게 전해졌다. 다원이 원했던 것도 아마 이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화면이 관람자의 수만큼 다른 무대로 펼쳐지는 순간 말이다.
 


글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작가: 다원 @_kimdawon_
전시: TRACE BELOW
일정: 2026. 7. 4 ~ 8. 1
장소: GALLERY CRANE @gallery_crane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 30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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