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철 초대개인전 아티스트 토크 현장 스케치, 갤러리파이 영종 > 갤러리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홈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 갤러리
갤러리 (9)

Gallery 국내 주요 갤러리와 전시 공간들의 프로그램과 전시 소식, 공간 정보를 소개합니다. 갤러리별 전시 흐름과 운영 방향, 참여 작가 등을 통해 동시대 미술 공간의 다양한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한재철 초대개인전 아티스트 토크 현장 스케치, 갤러리파이 영종    네이버 구글

해체된 얼굴, 자각으로 항해하다 영종도 바다를 마주한 갤러리파이 영종에서 한재철(JC.KHAN)의 초대개인전 《RAW & RAW》가 문을 열었다. 개막일인 지난 15일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는 김혜진 디렉터의 예리한 질문과 작가의 진솔한 답변이 40여 분간 이어지며, 참석자들에게 그림 너머의 사유를 전하는 깊이 있는 자리가 되었다. 얼굴과 항해, 날것과 자각을 하나로 꿰는 작가의 언어를 현장에서 기록한다.
이상민   승인 2026.07.16 09:42  |  최종 수정 2026.07.16 09:44
a

 

얼굴과 항해, 하나의 서사

Human·Face·Voyage·Wave, 네 개의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의 제목은 《RAW & RAW》다. 같은 단어를 두 번 겹쳐 쓴 이 제목에 대해 작가는 토크 초입에서 직접 설명을 내놓았다. 20년 가까이 묵혀두었던 거친 재질의 한지를 이번 작업에 처음 사용했다는 사연과 함께, 그는 "정제되지 않은 재료로 정제되지 않은 내면을 표현한다"는 취지에서 ‘RAW’를 두 번 썼다고 밝혔다. 하나의 ‘Raw’는 숯가루를 문지르는 재료의 날것이고, 또 하나의 ‘Raw’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내면이라는 것이다. 그는 "완결된 완성품을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라, 미결된 상태 자체에 관심을 갖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be3f687210281b495074a304b9b73702_1784162255_5694.jpg

      한재철 작가(중앙)과 김혜진 디렉터(갤러리파이 영종, 왼쪽)가 진행하는  아티스트토크 현장 


김혜진 디렉터가 이끈 대화

이날 토크는 갤러리파이 영종의 김혜진 디렉터가 사회를 맡아 진행됐다. 김 디렉터는 작품에 앞서 작가의 개인사부터 짚었다. 경상도 밀양 출신으로 부산에서 유년을 보내고, 2001년 일산동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력, 그리고 이번이 갤러리파이 영종의 두 번째 초대라는 사실이 소개됐다. 이어진 질문들은 단순한 신상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인물화의 왜곡된 조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항해라는 낯선 주제가 어떻게 인물 연작과 이어지는지를 차근차근 파고들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평소 어려웠던 화면의 해체와 왜곡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작가의 육성으로 듣는 창작 배경이 작품 감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림만으로는 좀처럼 닿기 어려운 창작의 맥락을, 정교하게 짜인 질문을 통해 끌어낸 결과였다.

작가는 대학 시절 사과 정물을 그리던 일화를 꺼내며 자신의 전환점을 설명했다. 100호 캔버스에 사과 껍질만 열심히 그리다가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혔고, 그때부터 손재주보다 본질과 내면을 향한 관심이 앞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화상으로 작업을 재개하는 습관, 인물을 안으로 파고들수록 오히려 갇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고백, 그리고 그 갇힘 끝에 시선을 조금씩 바깥으로 돌리게 됐다는 전환의 과정은, Human·Face〉 연작의 해체와 왜곡이 왜 그런 형태를 취하는지를 설명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관객들에게 "그림이 불편할 수 있지만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보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꾸미고 감추며 살아간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물화만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르는 없다는 것이다.


be3f687210281b495074a304b9b73702_1784162383_7141.jpg

     한재철(JC.KHAN) 초대개인전 《RAW & RAW》전시 전경 (갤러리파이 영종)


동서남북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

대화가 〈Voyage·Wave〉 연작으로 옮겨가면서, 작가는 오래된 고전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동서남북이라는 방위조차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성립하는 관계적 개념이라는 문장이었다. 항해의 목적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담담히 "목적지는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방향의 부재가 아니라 방향을 가늠하는 주체, 곧 자각이 모든 항해에 선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이어 우리 모두가 파도 속에서 자신을 세웠다가 소멸시키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존재이며, 최근 작업 테마 전반이 이 문제의식에 봉착해 있다고 밝혔다. 항해는 통제된 이동이고, 파도는 반복되는 명령이며, 휴먼은 그 명령을 수행하는 몸이고, 페이스는 그 결과가 응축된 표면이라는 작가의 최근 진단은, 이 자리에서 한층 더 육성으로 또렷해졌다.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는 대작 한 점을 작업실에 세워두고 꼬박 1년을 다시 들여다보고 고쳐나가는 과정, 그리고 한 평론가가 라디오에서 어느 한국 대표 작가의 생존작이 12점뿐이라 말한 것에 충격을 받아 이후로는 의식적으로 다작을 해왔다는 뒷이야기도 소개됐다. 다작이 능사는 아니라면서도, 화면의 균형과 구도만큼은 아무리 흔들리는 순간에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작업이 즉흥적 해체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붕괴임이 드러났다.


be3f687210281b495074a304b9b73702_1784162431_4217.jpg

한재철(JC.KHAN) 초대개인전 《RAW & RAW》전시 전경 (갤러리파이 영종)


갤러리파이 영종, 올곧은 기획의 힘

이번 전시를 지켜보며 다시금 눈에 들어온 것은 갤러리파이 영종의 기획력이었다. 공영순 대표는 상업적으로 소비되기 쉬운 형식적 인물화 대신, 인간 존재와 시대의 구조를 함께 질문하는 무겁고 진지한 작업을 초대전으로 두 차례나 선택했다. 관람 편의나 화제성보다 작품의 밀도와 담론의 깊이를 우선하는 이러한 기획 방향은, 영종도라는 지역에 안주하지 않고 수도권 미술 담론의 한 축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혜진 디렉터가 이끈 이번 아티스트토크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정교한 질문 설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평소 쌓아온 기획 역량의 결과였을 것이다. 지역 화랑이 이 정도의 담론적 밀도를 꾸준히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 대표와 갤러리파이 영종의 이 올곧은 기획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그리고 더 많은 작가와 관객이 이 자리를 통해 만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be3f687210281b495074a304b9b73702_1784162470_3705.jpg

한재철(JC.KHAN) 개인전 아티스트 토크에 참석한 관람객 단체 사진 (갤러리파이 영종)  


맺으며

RAW를 두 번 겹쳐 말함으로써, 작가는 손쉬운 위로나 저항의 구호 대신 두 개의 질문만을 조용히 돌려놓았다. 이 반복되는 항해 속에서 우리는 정말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얼굴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바다와 접한 갤러리파이 영종에서, 작가의 육성과 함께 얼굴이라는 항해도 한 장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하루였다. 전시는 8 15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명    한재철(JC.KHAN) 초대개인전 RAW & RAW

기간        2026 7 15() ~ 8 15()

장소        갤러리파이 영종 (인천광역시 중구 큰말로 69, 3)

아티스트 토크      2026 7 15() 오후 4, 진행 · 김혜진 디렉터(갤러리파이 영종)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