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을 회복한다는 것 - 몽고트갤러리, 『쓰임의 미학, TABLESCAPE』
그릇이 그릇으로 돌아오는 순간
압구정로 79길, 청담동 몽고트 갤러리 3층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낯선 질문이다. 이곳에 놓인 도자는, 정말로 '작품'인가, 아니면 '그릇'인가. 『쓰임의 미학, TABLESCAPE』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경계 자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펼쳐 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선 도자들은 좌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침묵하고 있지 않다. 강효성 장인의 정과가, 미정당의 손끝에서 계절을 머금은 채 그 위에 놓이는 순간, 도자는 비로소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 감상의 대상이었던 것이 쓰임의 주체가 되는 이 전환 - 나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통섭미술이 가야 할 하나의 방향이라 말해왔다. 예술은 벽에 걸리거나 유리 상자 안에 갇힐 때만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동선 속으로 되돌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도 있다는 것.
흙을 빚는 시간과 재료를 기다리는 시간
도예가가 흙을 빚고 가마의 불길을 견디며 하나의 그릇을 완성하는 시간과, 셰프가 제철 재료를 손질하고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견디며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는 시간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노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나에게 던진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두 시간 모두 '보이지 않는 정성'을 재료로 삼는다는 것.
강효성 장인은 좋은 음식을 “잘 익힌 음식”이라 정의하며,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이라 말했다. 최소한의 기계만을 쓰고 손의 감각에 의존해온 그의 태도는, 물레 앞에서 흙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도예가의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장흥의 바다와 땅을 발로 뛰며 재료를 찾아낸다는 향유수산의 김종한 대표, 4대에 걸쳐 영월의 땅과 계절을 존중하며 재료를 길러온 개척농장 - 이들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식재료'라는 단어는 더 이상 상품의 언어가 아니라 시간과 신뢰의 언어로 번역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통섭과 협업, AI 이후 인간의 전략>에서 거듭 강조했던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정보의 총합이 아니라, 손끝에 축적된 시간의 밀도다. 정과 하나, 도자 하나에 깃든 '기다림'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장은미, 취향을 설계하는 사람
이 전시의 기획자 장은미 대표를 나는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에서 이미 한 번 언급한 바 있다. 그때 나는 그녀를 컬렉터의 안목과 큐레이터의 감각을 동시에 지닌, 몇 안 되는 통섭적 기획자로 소개했었다. 이번 전시는 그 평가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장은미 대표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을 이렇게 밝힌다. 해외의 명품 하우스들이 수십 개의 공방과 장인들의 협업을 통해 고유의 철학과 품격을 완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녀는 공예가 결코 문화의 주변부가 아니라 미감을 이루는 본질적 가치임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공예의 가치를, 그녀는 미식이라는 가장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접점을 통해 재발견시키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이종 결합의 기획이 아니다. 공예를 감상의 자리에서 쓰임의 자리로 되돌리는 동시에, 미식을 맛보는 행위에서 감상하는 행위로 끌어올리는, 양방향의 통섭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고, 요리는 맛보는 것을 넘어서며, 두 감각은 제대로 하나의 경험으로 만난다”는 이번 전시의 문장은, 그래서 수사가 아니라 정확한 기획의 좌표다.
취향의 기록, 그 확장
『쓰임의 미학, TABLESCAPE』를 나서며 나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한다. 좋은 컬렉팅이란, 벽에 걸어둘 작품을 고르는 훈련이 아니라 삶의 자리마다 놓일 감각을 설계하는 훈련이라는 것. 고소미, 김민령, 김선경 외 여러 도예가들의 그릇이 테이블 위에서 셰프의 손을 거친 음식을 만나는 순간, 관람객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그 풍경의 완성자가 된다.
2026년 여름, 청담의 한 갤러리가 던진 이 질문 - 쓰임이야말로 미학의 완성이라는 명제 - 은 앞으로 내가 진행할 컬렉터 교육과 아트살롱에서도 반복해서 다루어야 할 화두가 될 것 같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이 조용한 전시가, 도리어 가장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