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인터뷰] 김지혜 개인전 《감각의 지층》작가와의 대화 - 아트스페이스엑스
스무 살, 판화 수업의 에스키스로 사진을 찍다
김지혜의 출발점은 회화였다. 판화를 전공하게 되었지만, 판화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이미 사진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머리로 생각해서라기보다 제 신체가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을 했던 겁니다. 판화라는 것이 무언가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행위잖아요. 그런데 사진은 카메라를 들고 어느 장소인가 내 신체가 직접 그곳에 가서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시각과 기계라는 장치, 그 사이의 인식을 통해서 내가 직접 떠내는 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점은 놀랍게도 스무 살, 대학 1학년 때다. 판화 수업에서 에스키스를 해오라고 하면 그는 사진을 찍어 조각내고 바닥 전체에 펼쳐놓은 뒤 콜라주를 만들었다. "콜라주의 매력은 전혀 엉뚱한 우연적 요소들이 합쳐졌을 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애초에 그런 우연적인 것을 들여오는 데 익숙했어요."
그리고 2011년 무렵, 결정적인 인식의 전환이 찾아온다. "내가 사용하던 사진이 디지털화됐잖아, 하면서 픽셀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예요. 시각적 증거로 알고 있는 이 사진의 기본 단위를 변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예중·예고를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을 가르치던 스승이 일부러 예중·예고 진학을 만류했다고 한다. "잘할 테니 인문계 학교에 가서 그들과 경쟁하며 공부해라, 대신 미술을 배울 좋은 선생님을 소개할 테니 따로 해라"라는 조언이었다. 양쪽의 생활을 모두 감당해낸 이 이력은, 이론과 감각을 병행해 밀고 나가는 지금의 작업 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층은 위계가 아니라, 열려 있는 지층입니다"
전시 제목의 '지층(strata)'은 이번 대화의 중심 화두였다. 필자는 이 개념을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 개의 고원』에서 다룬 지층 — 고정된 위계가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이 특정한 속도와 강도로 코드화되며 형성되는, 언제든 다시 풀려날 수 있는 잠재적 체제 — 과 겹쳐 읽을 수 있는지 물었다.
작가의 답변은 뜻밖의 확인이었다. "신기한 게, 저와 인터뷰 한마디도 없이 쓰셨는데 제 박사 논문의 철학적 베이스가 된 것이 들뢰즈예요. 들뢰즈 하면 가타리는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요."
제목을 정하기까지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원래는 좀 더 개인적이고 어려운 제목이었으나 갤러리 전시인 만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어를 찾았다. '감각'이라는 키워드는 "감각을 이성을 대체하거나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것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들어갔다. 문제는 그 뒤였다. '레이어'라는 말은 너무 흔하고 가볍게 읽혀 피했고, '지층'을 쓰면서는 위계질서로 오해될까 우려했다.
"전혀 그런 위계질서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지층은 열려 있는 지층이에요. 수직이라기보다 상호 소통,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한 층이죠."
작품 안에서 형상은 빼내어 추상이 된 것이 아니다. 픽셀을 늘리고 섞어가며 실제로 아주 미묘하게 겹쳐 눌러 넣은 것이다. "그 숨어 있는 요소들을 겉에서 다시 더듬어가고 우리가 인지해야 하는 과정을 담아낸 겁니다."
접촉 즉흥, 그리고 취약성
지층을 이야기하던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체 훈련으로 화제를 옮겼다. 그는 현대무용의 한 분야인 '접촉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 앉아 있는 것도 이 바닥과 내 발의 무게중심이 지면을 디디고 있는 거거든요. 손도 공기와 이미 접촉하고 마찰을 견디고 있고요. 그런 접촉의 개념을 가지고 즉흥 무대에 서는 겁니다."
그가 이 무대를 즐기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무대에 서는 순간 자신이 몹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어떤 게 나를 이렇게 해올지 모르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여서 내 신체를 통과해 내 것으로 만들어 발산할 때, 그게 즉흥의 매력이거든요. 저는 삶 속에서도 어떤 상황을 받아들일 때 이건 즉흥 무대다, 라고 생각해요.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필자는 이 대목에서 작가의 화면에서 나이테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자작나무가 높이 자라기 위해 가지를 떨어뜨리며 남기는 상처, 그 상처가 곧 시간의 퇴적이라는 점에서다. 김지혜의 작품은 멈춰 있는 한 장면의 어느 지점을 길게 늘여, 관람자가 파노라마를 보듯 감각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게 만든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이 무수히 겹쳐진 시간의 퇴적이다.
"공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제가 모르는 부분은 없습니다"
압축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단호했다. "의도는 있죠. 아주 작은 점부터 선, 면, 색까지 모든 게 의도입니다. 그러나 어떤 장면은 넣고 어떤 장면은 뺀다, 어디서부터 섞어서 몰라보게 만든다 하는 공식은 없어요."
대신 작동하는 것은 몸에 체화된 시공간의 기억이다. 사진을 찍던 당시의 상황이 신체에 남긴 감각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한 점이 나오기까지 폴더 안에는 수많은 시안이 쌓이고, 어떤 작품은 몇 년에 걸쳐 지속되기도 한다. "마지막 한 점을 어느 작품으로 최종 결정할 것이냐, 이건 정말 시간 싸움을 하면서 견뎌나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가 인상 깊었다. "이 작품 속에 제가 모르는 부분은 없는 거죠. 어느 것 하나도."
사진의 기록성을 믿을 수 없게 된 시대
장소성을 지우는 이유를 묻자 작가는 "의도적"이라고 답했다. 과거에는 사진의 기록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어 나머지를 관람자의 상상에 맡겼다. 그러나 점차 더 깊이 들어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사진은 뉴스의 보도 자료나 증거물로서의 기록이 분명히 있었잖아요. 가장 큰 기록 중 하나였죠. 그런데 이제는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을 수가 없게 됐다는 겁니다. 눈에 보여서 믿을 만하다고 했던 것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고, 현대인의 스트레스나 아픔이 일정 부분 거기서 출발한다고도 생각해요."
그러나 그의 작업은 회의적이지 않다. "그 아픔을 겪으면서도 저는 매우 긍정의 마인드가 있어서, 이런 상황 속에서 이걸 끄집어내 어떻게 새로운 걸 창조해볼까 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들거든요."
그래서 정보로서의 기록성은 지워나간다. 다만 그 방식이 핵심이다. "지운다고 해서 걷어내 빼내는 게 아니라, 그 밑으로 그냥 잠복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들어가야 우리가 그 위를 한번 더듬어볼 수 있고, 시각뿐 아니라 청각이나 온몸의 촉각,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더듬이들을 다 곤두세우면,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많은 것을 보고 세상을 조금 더 잘 파악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작품 제목에는 종종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다. 붉은 노을빛이 감도는 한 작품에 대해 작가는 작업 중 스트레스를 내려놓기 위해 한강을 걷고 뛰던 시간을 이야기했다. 다리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의 색감, 쨍한 노랑도 아니고 어둡게만 내려앉는 붉은색도 아닌 그 빛. "작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항상 내려놓아야 되는 것들, 그리고 새로 꿈꿔야 되는 것들을 다짐했던 시간을 표현한 겁니다."
다만 그 노을을 실제로 촬영한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도시의 장면에서 나온 색이다. "지금은 농촌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도시 공간이 또 다른 자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다 빠지고 골격만 남았을 때 그 거대한 도시 공간의 틈새, 그리고 간혹 사람이 스치는 순간들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원본 사진이 뭐였는지 나중에는 저도 잊어버려요.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사진이 종말을 맞은 자리에서 사진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 대목에서였다.
눈을 가린 채, 발로 더듬어 흙을 쌓다
"몸의 압력으로 땅과 지면을 더듬는 행위"로 작업이 확장된 계기를 묻자, 작가는 이번 전시 두 달 전인 4월 30일에 열었던 또 하나의 개인전 이야기를 꺼냈다. 1년 반 넘게 두 전시를 동시에 준비해왔는데, 그중 하나는 "내 사진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말로 해도 못 알아들으니 한번 보여줄까" 하는 생각에서 급히 끼워 넣은 전시였다.
그 전시에서 그가 한 것은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자신이 온전히 설 수 있는 크기로 자른 망 위에, 눈을 가린 상태에서 발로 더듬어가며 흙을 쌓아 올렸다. 천장 꼭대기까지 꽉 차게, 오로지 자신의 몸만을 이용해서. 사다리조차 눈을 감은 채 더듬어 올라갔다.
"제 몸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치까지 압력으로 눌러서 흙을 쌓았어요. 이건 어릴 때부터 했던, 지면에 대고 신체를 개입시켜 하던 드로잉, 그리고 판화를 하면서 했던 압축적이고 압력적인 행위들과 다 연관되는 겁니다. 사진, 퍼포먼스, 모든 게 다 연관돼요."
한 번 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사람들이 있는 데서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과학자의 연구실 같은 작업실
전시장에는 매끈한 플렉시글라스 마운트 작품과, 표면에 물성이 두껍게 쌓인 작품이 함께 걸려 있다. 후자에 대해 작가는 "액자를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넬에 사진 작업을 직접 씌우고, 화면 위에서 더듬어 나가는 형태들 — 빈 틈이나 공간 — 을 다시 자신의 신체로 따라가거나, 때로는 거부하고 벗어나며 대화를 나눠가는 과정이다.
이때 개입하는 미디엄이 매우 다양한데, 그 실험 과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건 무슨 과학자의 연구실 같다는 생각을 정말 했어요. 예술과 과학이 통한다는 건 알았지만, 예술가와 과학자가 정말 닮았구나 하는 걸 작업하면서 끊임없이 느낍니다."
벽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바닥에 눕혀놓고 흘린다. 그러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미디엄이 어떻게 흘러가고 싶다는 본인의 의도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 의도를 함께 조정해 나가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즉흥 무대와 비슷해요. 때로는 예상과 달라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실패마저 끌어안아서 어떻게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거죠."
물리적 조건도 만만치 않다. 하나의 형상을 올리면 최소 24시간, 정확하게는 하루 반에서 이틀을 말려야 다음 행위를 얹을 수 있다. 게다가 7년 차에 접어든 작업실에서 그는 여덟 번의 개인전을 전부 신작으로 치러냈다. 작품이 쌓여 바닥에 눕힐 공간조차 나오지 않는 환경에서다. "다 밀어놓고 어떻게든 하나의 작품이 들어갈 바닥을 만들어서, 구석구석 맴돌아가면서 한 작품 한 작품 다 만들어낸 거죠."
오리지널은 계속 늘어날 것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변화는 검은 목탄가루에 미디엄을 섞어 마티에르를 강조한, 에디션 없는 오리지널 연작이다. 판화라는 복제 가능성의 매체에서 출발한 작가가 왜 유일무이한 원본을 택했는지 물었다.
"오리지널 작품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아마 그쪽으로 더 많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는 복제 가능한 예술이냐 오리지널이냐의 문제는 애초에 자신에게 없었다고 못 박았다. "사진 전공자가 아닌, 회화나 판화 기반의 제 시각에서 사진을 대했을 때 픽셀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구상에서 완전히 새로운 추상으로, 경험을 전혀 다르게 전이시키는 것. 그게 저한테는 새로웠기 때문에 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형상을 완전히 잠복시키다 보니, 그 위를 더듬어 파악하고 싶어졌고, 나아가 사진의 표면 위에서 그 더듬어진 과정을 직접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물성마다 굉장히 달라요. 농도에 따라 다르고, 주변 기후에 따라 다르고, 마르는 시간에 따라 다르고, 온전히 눕혀놓고 작업한 것과 공간이 부족해 약간 기울였을 때조차 달라집니다. 그런 미세한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사진에 새로운 신체성과 주변 환경을 끌어들이는 거죠. 디지털 사진도 사실 행위성이 개입된 것인데, 그 표면 위에 실제의 행위를 다시 개입시키기 시작한 것이죠."
AI 시대, 신체성이라는 좌표
대화를 마무리하며 필자는 한 가지를 짚었다. AI 시대가 되면서 미술의 영역은 점점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김지혜가 지향하는 작업 경향 — 작가의 신체성이 물질의 표면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 — 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유의미해진다는 점이다.
압축된 이미지 위에 미디엄을 얹고, 하루 반을 기다리고, 흘러가는 물성과 협상하고, 눈을 가린 채 발로 흙을 더듬어 쌓는 이 모든 과정은 결과물의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한 사람의 신체가 시간을 통과하며 남긴 압력의 기록이다. 에디션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마케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의 문제다.
《감각의 지층》은 7월 26일까지 아트스페이스엑스에서 이어진다. 전시장을 찾는다면, 특히 지하에 걸린 오리지널 연작 앞에서 최소 3분은 머물러 보시기를 권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작품이 먼저 말을 걸게 두는 그 3분이, 이 전시가 말하는 '더듬기'의 가장 정확한 실천이 될 것이다.
《감각의 지층 Strata of Senses》 | 김지혜 개인전 | 2026. 6. 30 – 7. 26 | Art Space X (서울 서초구 청룡마을길 31)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