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대행 플랫폼의 그늘 — 검증되지 않은 갤러리가 작가를 노린다
좋은 전시를 기획하고 싶지만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 소규모 갤러리, 그리고 전시 기회가 절실한 신진·경력단절 작가. 이 두 수요가 맞닿는 지점에서 '전시 공모 대행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구조는 실용적이고, 순기능은 분명하다. 작가에게는 구인구직 사이트처럼 다수의 공모 정보를 한 곳에서 탐색하고 손쉽게 지원할 수 있는 편의가 생겼다. 갤러리 입장에서도 기존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넓은 작가 풀에 공모 사실을 알릴 수 있어 보다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가를 발굴하는 통로가 열렸다. 플랫폼이 양측의 접점을 효율적으로 매개하면서, 미술 생태계의 유통 구조 자체가 한층 민주화되는 효과도 낳고 있다.
그러나 한국작가후원연대(KASC)가 이 긍정적 흐름 속에서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은, 이 편리한 구조를 악용하는 일부 갤러리와 단체들 때문이다. 플랫폼은 갤러리의 신뢰도를 검증하지 않는다. KASC가 지난해까지 수집한 제보에 따르면, 작가를 대상으로 사기 전시를 반복적으로 자행해온 갤러리와 단체 다수가 현재 공모 대행 플랫폼을 통해 공모를 버젓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기존 채널에서 신용을 잃자, 플랫폼의 중립적 이미지를 방패 삼아 새로운 피해자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수법은 교묘하고 단계적이다
문제는 피해가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무료 공모', '참가비 없음'이라는 조건으로 작가를 유인한다. 당선 통보 후 갤러리와 협의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구조가 달라진다. 일부 작가에게는 전시 참가비의 50%를 '선택 사항'처럼 권유하고, 도록 제작비, 평론가 평문 비용, 해외 전시 추가 참가비, 단체전 합류 비용 등 각종 명목으로 청구 항목이 늘어난다.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작가가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계약 관계는 역전된다. 갤러리 보안 및 청소를 작가에게 전가하거나, 설치가 불완전한 채로 전시가 진행되기도 한다. 더 심각한 사례에서는 작품 판매 대금 미정산, 전시 종료 후 작품 미반환까지 이어진다. 이미 민사 소송이 계류 중인 갤러리가 동일한 수법으로 공모를 반복하는 경우도 KASC의 제보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 건 확인됐다.
플랫폼의 중립성은 갤러리의 면죄부가 아니다
공모 대행 플랫폼은 정보를 중개할 뿐, 갤러리의 사업 이력과 신용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등록된 갤러리라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공신력으로 오인되기 쉽다. 불건전한 갤러리는 바로 이 인식의 틈을 노린다.
플랫폼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아니다. 문제는 플랫폼이 만들어낸 신뢰의 외피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참여자들이다. 좋은 도구를 나쁜 의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결국 선의의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전시에 대한 간절함은 작가에게 가장 순수한 동기이자, 동시에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사기 전시를 일삼는 갤러리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간절함이다.
KASC의 권고: 지원 전 반드시 확인하라
한국작가후원연대는 다음을 강력히 권고한다.
전시 공모나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해당 갤러리 또는 단체의 운영 이력과 작가 평판을 주변 동료 작가를 통해 먼저 확인할 것. 확인이 어려운 경우 KASC 공식 채널(@artist.sponsor)을 통해 문의하면 된다. KASC는 지난해 말까지 접수된 사기 사례를 유형별로 분류한 피해 예방 매뉴얼을 제작,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예방만이 최선이다. 피해가 발생한 후에는 법적 구제 절차가 길고 소모적이며, 작가의 시간과 창작 에너지를 고스란히 잠식한다. 공모 플랫폼의 편의성을 충분히 활용하되, 갤러리의 신뢰 여부는 반드시 작가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 플랫폼이 건강한 미술 생태계의 인프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주의와 더불어 플랫폼 운영 주체의 자정 노력 또한 요구된다.
한국작가후원연대(KASC)는 작가 대상 사기 및 불공정 관행 제보를 상시 접수하고 있으며, 수집된 사례를 바탕으로 예방 자료 제작 및 정책 제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artist.sponsor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