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②】 부산이라는 문법 - 지역성이 곧 세계성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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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미술계 이슈와 전시, 시장, 문화, 동시대 예술 흐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글을 전합니다. 필진과 에디터의 시선을 통해 변화하는 아트 신(scene)의 흐름과 담론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특집②】 부산이라는 문법 - 지역성이 곧 세계성이 되려면    네이버 구글

마이애미는 바다였기에 세계를 불렀다. 베니스는 물의 도시였기에 비엔날레가 탄생했다. 부산은 무엇인가. 항구였고, 피란수도였고, 지금은 해운대가 있다. 그 도시의 DNA를 아트페어가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가.
이상민   승인 2026.05.23 06:58
[아트부산2026 특집] 연재 순서

【특집①】 장터인가, 플랫폼인가 - 무엇을 팔고 무엇을 남겼나
【특집②】 부산이라는 문법 - 지역성이 곧 세계성이 되려면
【특집③】 아트부산이 남긴 것들 - 놓치지지 말아야할 전시
【특집④】 페어 이후를 설계하라 - 미술감상교육의 필요성


페어는 언제나 도시보다 작다. 아무리 규모가 커도, 아트페어는 그 도시 안에서 열리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떤 페어는 도시를 바꾼다. 아트바젤 마이애미가 그 전형이다.

마이애미 비치를 힙한 문화 도시로 재생시킨 것은 전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갤러리와 컬렉터, 후원가들이 모이지만 권위적이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이며, 페어가 열리는 동안 젊고 실험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작은 갤러리들의 위성 페어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이 기간은 자연스럽게 페스티벌처럼 도시를 달군다. 전세기를 타고 오는 셀러브리티나 컬렉터들, 인근 아파트와 맨션에 아예 방을 잡은 딜러들, 몰려드는 예술 애호가들 덕분에 마이애미 비치의 스카이라인 자체가 불과 몇 년 새에 기적처럼 바뀌기도 했다.

이것이 페어의 진짜 힘이다. 단순한 판매 행사가 아니라, 도시의 물리적 풍경과 문화적 기억 자체를 재배치하는 사건. 마이애미는 오랫동안 미국과 중남미의 연결통로였는데, 아트바젤은 그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비엔날레에 버금가는 메리디안(Meridians) 섹션을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특수성이 콘텐츠가 된 것이다.


부산의 DNA는 무엇인가

부산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도시다. 항구의 역동성, 피란수도의 역사적 중층성, 영화와 음악이 살아 있는 대중문화의 도시,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 중 하나. 부산이라는 도시 특유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반영되며, 바다가 가까운 휴양지라는 강점이 있고, 해외 미술 관계자들에게는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페어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이 여러 층위의 도시적 자산을 아트페어가 얼마나 깊이 소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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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5년 이하 갤러리 24곳이 참여하는 'FUTURE(퓨처)' 섹션에 오타 작가 솔로 부스로 참여한 갤러리크레인 부스 전경



아트부산 2026이 시도하는 '부산아트위크' 프로그램은 이 방향에서 주목할 만하다. 벡스코를 넘어 도시 전체로 예술 경험을 확장하겠다는 의지, 과거 권력의 상징이었던 옛 부산시장 관사 '도모헌'에서 오프사이트 전시가 진행되어 역사적 장소를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는 시도는 공간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지난 아트부산 2025에서도 전야제 격으로 정현 작가의 대형 조각 작업인 '서 있는 사람'을 도모헌 야외 공간에서 선보이며 행사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침목과 고철, 잡석 등 버려진 재료로 만든 4m 높이의 조각이 구 시장 관사 뜰에 세워지는 장면 - 이것이야말로 아트부산이 찾아야 할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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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헌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부산 2026 : ART ACCENT: Prologue' 행사 포스터

 

올해 도모헌에서도 ‘아트부산 2026 : ART ACCENT: Prologue'라는 행사가 도모헌 1, 2층의 공간에서 6월 21일까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김서량,  이태수,  김원진, 허찬미, 박영환 작가의 참여로 연계 전시되고 있다. 이 행사는 청년 작가의 실험성과 중년 작가의 깊이를 결합하여 세대 간 예술적 조화를 선보이는 아트부산 연계 전시다. 


페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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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퓨처)' 섹션에 참여한 히피한남(Hippie Hannam)은 류지민의 회화를 소개했는데, 류지민은 하나금융그룹이 시상하는 '하나퓨처아트어워드'를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 아트부산들을 돌아보면, 전환점마다 주목할 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2025년에는 방정아 작가의 대형 걸개형 천 작품 '얼씨구 절씨구'와 '올리버 스톤의 수영'이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경계를 가르고 흐르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명하며, 빛과 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부산 기반의 작가 방정아가 아트부산의 커넥트 섹션에서 대형 작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로컬 작가가 로컬 페어에서 갖는 의미를 새롭게 설정한 사례였다.

올해는 김은주 작가의 특별전 ‘커넥트(CONNECT)’가 눈길을 끌었다. 김은주 작가의 ‘그려보다(Toward Drawing): Graphite Ground’는 감각의 시간성과 물질의 속성이 하나로 융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일 색상인 검은색에서 생성되는 수십 가지의 명도와 질감은, 동양화의 먹 문화가 제시해온 색의 무한성을 연필이라는 서구적 도구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한 재료의 전환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사와 서양의 도구 문명이 만나는 문명사적 수렴점이다. 연필이 종이 위에 만드는 다양한 명도는 빛의 각도에 따라 일렁이며 생동감을 더한다. 마치 유화 물감을 덧칠하듯 수없이 많은 연필의 선을 쌓아 올리는 행위를 통해, 화면에는 고유한 질감과 양감이 형성된다. 작가에게 '그려보다'는 결코 소극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적극적인 시간의 조각이며, 신체적 행위를 통한 영혼의 정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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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작가의 특별전 ‘커넥트(CONNECT)’ 부스 전경



또한 글래드스톤 갤러리(알렉스 카츠, 우고 론디노네 신작), 탕 컨템포러리 아트(아이 웨이웨이, 린 팡루), 국제갤러리(줄리안 오피 솔로 부스), 화이트스톤갤러리, 조현화랑, 리안갤러리, 더 페이지 갤러리 등이 핵심 라인업을 형성한다. 알렉스 카츠와 줄리안 오피는 각자의 방식으로 '현대의 초상'을 다루는 작가들이다. 아이 웨이웨이는 정치적 발언과 예술적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들이 부산에서 한자리에 선다는 것은, 아트부산이 이제 블루칩 시장의 진지한 플레이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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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의 줄리안 오피 솔로 부스 앞을 지나는 관람객이 묘하게 작품과 어우러진다 



'라이트하우스'와 '디파인' - 새로운 실험의 문법

아트부산 2026이 신설한 '라이트하우스(LIGHTHAUS)' 섹션은 단순한 판매 부스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전시 공간으로 갤러리 부스를 재구성하는 시도다. 이것은 단순한 섹션 추가가 아니다. 아트페어의 문법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갤러리는 파는 곳이지만, 동시에 보여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원론으로의 회귀한 실험이다.  'LIGHTHAUS' 프로젝트는 '부스-인-부스' 구조를 통해 큐레이토리얼 기획과 공간 디자인을 함께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부산 지역 화랑인 OKNP가 일본 도쿄의 츠타야 북스와 협업한 라이트하우스 프로젝트가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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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이아크 김해 미술관 등 '디파인' 섹션에 참가한 부스 전경



'디파인' 섹션은 2028 부산 세계디자인수도(WDC) 선정을 기념하여 건축가 구마 겐고의 프로젝트를 포함해 프리츠 한센, 가리모쿠 등 국제 브랜드들이 참여했다.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이 섹션은 아트부산이 부산의 도시 정체성과 연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세계디자인수도라는 타이틀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 타이틀이 아트부산의 콘텐츠로 흡수될 때, 비로소 부산이 단순한 개최 도시에서 내용을 가진 도시로 전환된다.


도쿄 겐다이가 주는 교훈

해외 사례 중 아트부산이 가장 진지하게 참조해야 할 페어는 아트 도쿄 겐다이(Tokyo Gendai)다. 2023년 출범한 신생 페어이지만, 일본이라는 도시 문화와 컬렉터 구조를 정밀하게 이해한 설계로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도쿄는 단순히 페어가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 페어의 내용을 구성하는 언어 자체가 됐다. 아트부산 역시 이 수준의 밀도로 부산을 소화해야 한다.

다음 회에는 아트부산의 놓치지지 말아야할 전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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