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기획 1회 】 통섭미술 그림감상문, 세상 모든 지식으로 '취향의 기록' 작성하기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승리한 뒤 반드시 전황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그것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전투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쓴다는 행위는 생각을 언어로 고정하고, 감정을 의미로 전환하며, 막연한 인상을 명료한 통찰로 빚어낸다.
나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눈이 고요해지고, 어깨가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 순간을 본다. 그들은 분명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갤러리를 나서는 순간 그 느낌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머릿속의 인상은 붙잡지 않으면 연기처럼 흩어진다. 쓰지 않은 감상은 감상이 아니라 스쳐 지나간 감각에 불과하다.
미술감상교육의 미완성 — '보기'에서 멈춘 교육
현행 미술감상교육은 대체로 '보기'에서 멈춘다. 펠드만(E. B. Feldman)의 4단계 비평 모형—기술, 형식 분석, 해석, 판단—이나 대화 중심 감상법(VTS)은 훌륭한 방법론이지만, 감상자가 자신의 내면 언어로 작품을 붙잡는 단계, 즉 '쓰기'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반쪽짜리 교육이다.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경험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성적 사고의 가장 유효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리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왜 그 작품에 반응했는지, 그 반응이 자신의 어떤 경험과 지식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내면 탐구의 과정이다.
도해력(圖解力)의 시대 — 이미지를 읽고 쓰는 능력
나는 미술인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도해력(graphicacy)'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다. 비주얼 저널리즘의 권위자 알베르토 카이로(Alberto Cairo) 교수는 문해력이 읽고 쓰는 능력이고, 산술력이 숫자를 다루는 능력이라면, 도해력은 시각 자료를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유통하는 지금 이 시대에,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읽고 자기 언어로 쓸 수 있는 능력은 민주 시민의 핵심 역량이다.
그런데 도해력은 단순히 그림을 설명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림이 품고 있는 맥락(context)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텍스트를 읽는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듯, 그림을 본다고 감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형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철학, 문학, 과학, 역사—세상 모든 지식이 그림 앞에 소환될 때 감상은 비로소 깊어진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통섭미술 감상법'의 출발점이다.
『통섭미술 그림감상문』이 시작된 이유
2024년 한국작가후원연대(KASC)를 설립하고 컬렉터를 발굴·교육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직접 쓰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돌아오면 반드시 통섭미술 감상법으로 글을 써서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했다. 그렇게 쓰인 전시 서문과 작품 감상 30편이 모여 『통섭미술 취향의 기록 1』(2025, 도서출판 더썬)이 되었다.
그 책을 쓰고 나서 나는 확신했다. 감상을 글로 남기는 행위가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작품과의 관계를 지속시키며, 나아가 미술 생태계에 실질적인 애정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이 연재는 그 확신에서 출발한다. 그림을 보는 것에서 그림을 쓰는 것으로—그 전환이 어떻게 가능한지, 왜 필요한지를 5회에 걸쳐 풀어나가려 한다.
"미술감상은 어렵지 않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삶 속에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았다. 바로 그런 개인의 지식과 경험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와 소통하는 것이 통섭미술 감상법이다. — 『통섭미술 취향의 기록 1』 프롤로그"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