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러다 보니 그림이 항상 더 많아지죠"
운중화랑 〈두 개의 숨〉 오프닝 현장
지오최·추니박, 30년 동행의 두 번째 호흡
이상민
승인 2026.05.30 11:32
5월 29일 오후 5시,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자리한 운중화랑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깨끗한 늦봄 하늘에 구름 걸린 산세가 창밖으로 유려하게 펼쳐지는 이 공간에서, 오늘은 조금 특별한 전시의 막이 올랐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두 화가의 2인전 - 지오최와 추니박 작가의 〈두 개의 숨 Two Breaths〉이다.
오후 5시를 전후해 하나둘 모인 인파는 저녁 무렵엔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오래된 지인들, 동료 작가들, 평론가, 컬렉터들이 작품 앞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갤러리 측에서 준비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 넉넉하게 차려졌고, 주인장이 직접 구었다는 바비큐는 인기가 제일 많았다. 오프닝의 간단한 다과가 아니라 그야말로 잔치였다.
"의정부 작업실 1층에서 추니박 작가가 너무 열심히 하고 있으면, 3층 제 작업실에 안 할 수가 없어요"
인사말에 나선 지오최 작가는 이날 전시를 가능하게 한 힘을 딱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작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의정부 작업실 1층에서 추니박 작가가 너무 열심히 하고 있으면, 3층 제 작업실에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그림이 항상 더 많아지게 되고… 앞으로도 오래 같이 이렇게 그림 그리고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과 박수가 섞였다. 30년 동반의 미학은 거창한 언어 속에 있지 않았다. 1층과 3층, 두 개의 작업실, 서로를 보며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 그것이 이 전시 '동행'의 가장 솔직한 서문이었다.
추니박 작가는 "각자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둘이 같은 자리에서 보여드릴 수 있게 됐는데, 보시는 분들한테도 굉장히 뜻깊은 것 같다"며 이번 동행전을 제안해준 운중화랑 김경애 대표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 대표는 두 작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기지우(知己之友)로 시작해 고된 창작의 길을 함께 버텨낸 이 '가시버시 화가'의 아름다운 동행은, 이제 한국화의 현대적 변주를 각자의 개성으로 펼쳐내며 우리 화단을 든든히 받치는 중진의 무게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운중화랑 대표 김경애, 전시 서문 중)
계란프라이의 비밀 - 다섯 살 기억이 15년 연작이 되기까지
인사말이 끝나고 음식이 오간 뒤, 필자는 지오최 작가와 화면 속 오브제들을 두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계란프라이, 리본, 포도, 식물들 - 이 친숙하고도 낯선 오브제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계란프라이는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물음에 작가는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을 꺼냈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계란프라이를 처음 봤을 때 그 형태를 보고서 완전히 꽃으로 인식한 거예요. 저한테는 계란프라이가 꽃으로 보였다는 것 자체의 시각적인 것도 있지만, 그것에서 엄마의 모성이 느껴졌죠."
2011년부터 시작된 이 오브제는 그 후 15년 동안 끊임없이 변주되어왔다. 노른자에서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되고, 날개를 달아 날아다니는 '매추리 천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것이 단순한 시각적 유희가 아님을 덧붙였다. "태어나는 것, 태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 오브제가 중의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아주 근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예요."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거미에 비유했듯, 지오최의 계란프라이는 생명의 원초(原初)를 담은 그릇이었다.
리본의 고백 - "남을 위해 존재하던 리본이 어느 날부터 나 자신이 된 거예요"
전시장 한켠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광활한 벌판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크고 당당한 리본. 제목은 'I AM THE RIBBON'.
필자가 "리본이 작가님 자신처럼 보였다"고 말하자, 작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본은 원래 선물을 더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단독으로 있으면 별 의미가 없는 게 리본이잖아요. 그래서 남을 위해 존재하던 그 리본이 어느 날부터 나 자신이 된 거예요. 2022년 즈음 불현듯 이제 나를 앞으로 드러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리본이 이렇게 커졌지요."
2022년. 화가로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로 결심한 해. 그 이후 리본은 벌판에 서고, 사막 선인장에 뿌리를 내리고, 매화로 피어났다. 존재의 선언이 오브제가 된 것이다.
다른 언어로 같은 숨을 쉬다
전시는 다양한 각도에서 관람하면서 추니박 작가와 지오최 작가의 작품이 오버랩되게 배치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두 작가의 세계를 교차해서 보는 것이 이번 관람의 묘미다.
추니박 작가의 회화 앞에서는 다른 종류의 압도감이 온다. 한지 위에 전통 수묵과 아크릴을 융합한 역동적인 붓질, 스스로 개발한 '라면준·압정준·철선준' 같은 현대적 준법(皴法)들이 만들어내는 산수 풍경은 사실과 추상 사이 어딘가에서 진동한다.
오프닝 현장에서 한 참석자는 두 작가를 이렇게 비교했다. "두 분은 표현 방법은 너무 다른데,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의 반복되는 메시지들, 이야기하는 방식은 닮았다." 30년의 시간이 서로를 더욱 고유하게 단련시키면서도, 어딘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한편, 이날 현장에서는 두 작가의 향후 개인전 소식도 전해졌다. 지오최 작가는 올 9월 말 청담동에서 단독 개인전을 준비 중이며, 추니박 작가도 별도의 개인전 일정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오프닝에서 만난 두 컬렉터는 이미 각 작가의 작품을 시리즈로 수집해온 오랜 컬렉터들이었다.
홍익대에서 출발한 두 동문, 화단의 중진으로
지오최 작가는 1966년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취득했다. 서예 집안의 내림과 정통 동양화 전공을 바탕으로, 도자·가구·애니메이션·3D 영상·AI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경계를 확장해온 작가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삼성전자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추니박 작가 역시 동갑내기 홍익대학교 동양학과 출신으로, 2006년 동아일보 주최 '올해의 최고 작가' 한국화 부문 1위, 2010년 중앙일보 '평론가 50인이 뽑은 3040 10대 작가'에 선정된 한국 현대 동양화의 대표 주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비롯한 주요 기관 소장처를 보유하며,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과 LA 아트쇼 등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전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학교 동문으로 만나 30년을 함께 그려온 두 작가. 그 인연은 오늘 운중화랑에서 각자의 언어로, 그러나 같은 공기를 나누며 나란히 숨 쉬고 있다.
〈두 개의 숨 Two Breaths〉
지오최·추니박 2인전
2026. 5. 29 – 6. 27
운중화랑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971-1) / T. 031-703-2155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