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임 @yeoim.choi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최여임 여섯번째 옻칠이야기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6.12 09:28
최여임 @yeoim.choi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최여임 여섯번째 옻칠이야기
<커넥트: 어제를 담아 오늘을 말하다>
2026.6.10(수)~6.15(월)
인사아트센터 4F 부산갤러리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최여임(b.1971)
옻나무가 흘린 눈물로 그린 그림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옻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하얀 수액이 흘러나온다. 생옻이다. 이 수액에는 '우루시올(Urushiol)'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에 닿으면 심한 발진을 일으킨다. 그래서 옻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옻을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옻이 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재료. 최여임 작가는 그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인류는 이 수액을 9,000년 전부터 사용했다. 고려의 나전칠기, 조선 사대부의 문방구. 옻칠은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라 그 시대 최고의 기술력과 미감이 집약된 문명의 언어였다.
이 전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천지인(天地人)'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천(天)은 화판 — 우주이자 작가의 사유가 펼쳐지는 장. 지(地)는 자개, 칠분, 토분이 이루는 대지. 인(人)은 토분으로 찍어낸 문양이다. 두 번 다시 똑같은 것이 나오지 않는 그 무늬는 인간 각자가 지닌 존엄과 독립성의 표현이다.
〈마당〉 연작 앞에서 발걸음이 머물렀다. 작가는 어린 시절 마당이라는 공간이 오늘날 '광장'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한다. 작품 귀퉁이에 적힌 '서울 어딘가의 주소'는 실재하지 않는 곳이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된 한국계 입양인이 고국을 찾았을 때 자신이 태어난 주소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는 이야기. 작가는 그 기사를 읽고 사라진 장소를 화면 안에 되살렸다. 없는 주소가 품은 있는 기억.
작품 표면에는 시간이 쌓여 있다. 칠하고, 말리고, 사포질하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 동안 화면 안에 빨강도 있고 노랑도 있고 흰색도 쌓인다. 기계로는 할 수 없다.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는 오롯이 작가의 손과 눈이 결정한다. 나무에서 채취한 옻은 철분을 만나 깊고 윤기 있는 검정이 된다. 이것을 작가는 '현(玄)'이라 부른다 — 우주와 철학이 담기는 공간으로서의 색.
옻칠은 느리다. 빠름이 미덕인 시대, AI가 속도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기다림과 반복과 몸의 감각으로 쌓아올린 층위들은 더욱 빛난다. 옻나무가 상처를 입어야 수액을 내듯, 진정한 예술은 무언가를 감수한 자리에서 태어난다. 최여임의 옻칠 앞에서, 나는 9,000년의 무게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한 작가의 정직한 시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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