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록] 임서현 @limseohyun.hong.gu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7.23 09:36
[취향의 기록] 임서현
@limseohyun.hong.gu
임서현 개인전 《Dreaming Cave 지하의 기억》
OMG (Ordinary Moment Gallery),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12길 8
2026. 7. 17. – 8. 1. / 화–토 13:00–18:00
@omg.seoul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임서현(b.1997)
공포의 크기만큼 욕망은 자란다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전시장에서 작가에게 감각과 감정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임서현은 감각은 몸에서 일어나고 감정은 생각의 영역에 있는 것 같은데 자신에게는 둘이 거의 맞닿아 있다고 답했다. 감각 없이 감정만 느끼면 충분히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많은 화면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대개 감각이다. 차갑다, 뜨겁다 같은 명시적 상태들. 감각을 그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무는 동안 내가 만난 것은 감정이었다. 이름 붙은 감정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공포심,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만큼의 잔인함 같은 것. 숨겨두었던 마음이 화면에서 걸어 나올 때 감상자는 뜨끔해진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전시가 결국 한 사람의 감정에 대한 고백록으로 읽히는 이유다.
이지혜 디렉터는 전시 서문을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으로 열었다. 내밀함을 이해하려면 시점을 밝히기보다 그 삶이 깃든 공간을 찾는 편이 급하다는 통찰이다. 다만 한 겹을 덧대고 싶다. 바슐라르가 말한 것은 기억의 장소성이지만, 임서현의 화면에서 장소에 뿌리내린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원래 형체가 없다. 특정한 공간을 통과할 때 비로소 부피와 온도와 무게를 갖는다. 동굴은 그가 사건을 겪은 곳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처음으로 몸을 얻은 곳이다. 이 전시에서 동굴은 소재가 아니라 방법론이다.
작가가 동굴에 들어간 계기는 공황장애였다. 통째로 백 미터에 이르는 수직굴,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허공, 매듭 하나를 잘못 묶어 목숨을 잃은 이들. 그리고 좁은 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순간, 사라졌던 심장 박동과 땀 냄새와 흙냄새가 한꺼번에 되돌아온다. "공포를 몸으로 느껴보니까, 느낀 만큼 반대편에 있던 감정이 엄청나게 살아나더라고요." 이 한 문장이 임서현 회화의 열쇠다. 공포의 반대말은 안도가 아니라 욕망이다. 〈추락〉(2026)의 뒤엉킨 몸들은 떨어지면서도 횃불을 놓지 않고, 발 하나는 한 뼘 남짓한 바위 턱을 끝내 찾아 디딘다. 절망의 도상 안에 이미 의지가 심겨 있다. 〈허기진 바다〉(2025)도 같다. 명상에 몰두하며 그가 만난 것은 고요가 아니라 거대한 허기였고, 허기가 클수록 삶의 의지도 커진다는 깨달음이었다.
최면을 통해 들여다본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가난한 소녀의 생기를 갖고 싶어 뒤를 쫓다 그를 죽게 만들고, 구조자인 양 시신을 수습해서는 몰래 손을 만졌다는 것. 작가는 이것이 결국 그림 그리는 행위와 닮았다고 했다. 생기 있는 존재를 붙잡아 박제하고 싶은 마음.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소유하려는 폭력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신양희 큐레이터가 이 작가의 화면에서 형상들이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서로를 포함한다고 본 것, 불안과 극복과 위로를 두루 끌어안는다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전시의 회화적 변화는 밀도의 조절이다. 정교한 도상으로 상징이 되어버리던 화면에서 힘을 빼자, 형태는 흐려졌는데 전달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감각은 명료한 윤곽을 요구하지만 감정은 윤곽을 지워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럼에도 작가는 결국 따뜻한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품〉(2025)에서 포옹하는 손이 유난히 작아 태아의 손처럼 보이는 이유다. 두 몸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번져 들어가는 겹침의 순간이다.
그는 자신의 공포와 욕심과 잔혹함을 꺼내놓지만, 전시하려고 꺼내는 것이 아니다. 꺼내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각자의 지하에 고여 굳힌 감정을 그가 대신 꺼내놓을 때, 뜨끔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뜻밖에도 안도감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극복은 감정을 없애는 데서 오지 않고 마주 보는 데서 온다.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한 사람만이 밖의 빛을 그렇게 알아본다. 임서현이 우리에게 건네려는 것은 결국 그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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