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철 작가님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j.c.khan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7.16 10:55
한재철 작가님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j.c.khan
한재철(JC.KHAN) 초대개인전 《RAW & RAW》
2026년 7월 15일(수) ~ 8월 15일(토)
갤러리파이 영종 (인천광역시 중구 큰말로 69, 3층)
@gallery_pi_yeongjong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한재철(b.1966)
날것의 얼굴이라는 항해도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날것(raw)'은 익지 않은 음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문학에서 날것이란 사회와 문화가 만든 여러 규칙에 아직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 존재가 가장 원초적인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날것과 익힌 것』에서 날것을 자연에, 익힌 것을 문화에 대응시켰다. 불로 음식을 익히는 행위는 자연을 인간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보가 편집되고 감정이 관리되는 오늘, '날것'은 오히려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완벽함보다 결함이, 연출보다 우연이 신뢰를 얻는 시대다.
바다 냄새를 따라 들어선 갤러리파이 영종. 벽면엔 'RAW & RAW'라는 제목이 걸려 있었다. 같은 단어를 두 번 겹쳐 씀으로써, 작가 한재철은 재료의 날것과 내면의 날것, 두 겹의 본질을 선언한다.
〈Human〉·〈Face〉 연작 앞에서 그 선언은 구체화된다. 반복된 붓질과 해체·응축을 오가는 화면은 특정한 초상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퇴적된 지층이다. 레비나스는 얼굴을 '타자성이 도래하는 자리'라 불렀고, 들뢰즈는 얼굴을 권력이 작동시키는 하나의 '기계'로 읽었다. 한재철의 얼굴은 이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 타자를 향한 호소이면서, 이미 하나의 틀로 굳어버린 얼굴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베이컨의 비명 지르는 얼굴과 애드리언 게니의 뭉개진 얼굴 앞에서 나는 늘 불안과 잔혹을 느꼈다. 그런데 한재철의 얼굴에서는 위협이 아니라 반성이, 잔혹이 아니라 위로가 올라온다. 그들의 얼굴이 외부의 폭력을 증언한다면, 한재철의 얼굴은 스스로 안으로 파고들다가 자청해서 겪는 붕괴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스로 갇히고, 스스로 깨지고, 다시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는 그 자발성이 성찰과 위로를 만든다.
작가의 노트가 전시를 관통한다. "인간과 항해는 결국 하나의 서사다." 얼굴=항해라는 존재론적 등식은 〈Voyage〉·〈Wave〉 연작에서 완성된다. 아티스트 토크에서 그는 고전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동서남북이라는 방위는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성립한다는 것. '목적지는 없다'는 그의 답은 방향의 부재가 아니라, 자각이 항해에 선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최근 작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항해는 통제된 이동, 파도는 반복되는 명령, 휴먼은 그 명령을 수행하는 몸, 페이스는 그 결과가 응축된 표면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로 나아간다 믿는 항해가 실은 사회가 요구하는 명령의 리듬 위에 있다는 진단이다. 경영과 전략을 오래 연구해 온 나의 눈에도, 이 그림들은 조직과 개인이 매끈한 답 뒤에 숨긴 '통제와 자율성'의 초상으로 읽힌다.
결국 항해란 시간의 흐름이다. 나 역시 요즘 얼굴에서 그 흐름을 마주한다. 늘어나는 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카락, 조금씩 넓어지는 이마 — 세상의 파도를 헤치며 건너온 시간의 기록이다. 한재철의 화면 앞에서 나는 이미 해체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항해해야 하는 나 자신을 가만히 본다.
RAW를 두 번 겹쳐 말함으로써, 작가는 손쉬운 위로나 저항의 구호 대신 두 질문만을 조용히 돌려놓는다. 이 반복되는 항해 속에서 우리는 정말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얼굴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바다와 접한 갤러리파이 영종에서, 얼굴이라는 항해도 한 장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하루였다.
한재철은 인간 존재와 삶의 항해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온 작가다. 〈Human〉·〈Face〉는 시간과 감정이 퇴적된 얼굴을, 〈Voyage〉·〈Wave〉는 삶의 시련과 나아가는 힘으로서의 파도를 그려왔다. 이번 전시는 이 네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아 "인간은 삶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하나로 집약해서 조용히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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