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조은비(b.1984) 평면은 곡면이 될 수 없다는 정리
조은비(b.1984) (경희대 대학원 26학번 회화)
〈외피 드로잉〉 2026, 한복 천(폴리에스터)·실, 5×8×11cm
— 평면은 곡면이 될 수 없다는 정리 —
이상민
승인 2026.08.28 15:52
손바닥에 올릴 만한 크기의 청록색 천 조각이 있다. 부풀어 오른 둥근 덩어리에 가늘게 잡힌 주름과 시접이 보이고, 거기서 실 한 가닥이 뻗어 나가 작은 주머니 하나로 이어진다. 속은 비어 있고 겉만 있다. 제목 그대로 외피다.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혹은 있어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노트가 이 작품의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솔직하다. 종이로 본을 만들어 천에 대고 치수를 재었는데 막상 바느질하니 계산과 다른 모양이 나왔다는 것. 뾰족지붕이 되어야 할 것이 비닐하우스 같은 모양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는 것. 나는 이 담담한 고백 앞에서 오래 웃었고, 곧 진지해졌다. 여기에는 실패담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
평면을 곡면으로 만들 때 오차가 생기는 것은 손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기하학의 법칙이다. 가우스는 곡면의 휘어진 정도가 그 면을 늘이거나 찢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고, 스스로 이를 놀라운 정리라 불렀다. 결론은 단순하다. 구면은 평면으로 펼칠 수 없고, 평면은 구면이 될 수 없다. 오렌지 껍질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벗겨도 평평하게 펴지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고, 모든 세계지도가 어딘가를 왜곡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것이다. 재단사가 옷본에 다트를 넣고 시접을 두는 것도 같은 이유다. 조은비가 종이 본대로 재고 잘랐는데 다른 형태가 나온 것은, 그러니까 틀린 것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게다가 재료가 한복 천이라는 점이 이 필연을 한 겹 더 설명해 준다. 한복은 본래 평면 재단의 옷이다. 서양 복식이 몸의 굴곡을 따라 천을 입체로 마름질해 왔다면, 우리 옷은 직선으로 재단한 천을 몸에 둘러 여미는 방식으로 입체를 만든다. 옷 자체는 평면이고 몸이 입체를 만들어 주는 구조다. 그런 천으로 몸 없이 입체를 세우려 했으니, 뾰족한 지붕이 둥글어진 것은 재료가 자기 성질대로 대답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그 대답을 받아들인다. ‘살면서 계획대로만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뾰족했던 시간이 둥글어지는 과정은 꽤 다채로우니까’. 이 두 문장은 짧지만 이 특별전을 통틀어 가장 좋은 작가노트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패를 미화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다만 결과가 계획과 다른 것을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어긋남에서 생긴 형태를 그대로 남겨 둘 뿐이다.
'드로잉'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붙인 것도 정확한 선택이다. 드로잉은 완성작이 아니라 생각이 지나간 자국이고, 지운 흔적과 잘못 그은 선을 함께 남기는 형식이다. 작가가 자기 천 작업을 조각이 아니라 드로잉이라 부를 때, 그는 이것이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기록임을 밝히고 있다. 시접과 주름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옆에 딸린 더 작은 주머니와 이를 잇는 실 한 가닥은 이 형태가 혼자가 아님을,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조용히 알린다. 남겨진 것들이라는 뜻의 2026년 개인전 제목 《Lost Property》가 여기 겹쳐진다.
컬렉터에게 이런 작은 섬유 작업은 다루기에 조심스럽지만 애착이 크다. 먼지와 습기에 약하니 아크릴 케이스에 넣어 두는 편이 좋고, 조명은 은은해야 얇은 천의 반투명함이 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눈높이에 두어야 한다. 5센티미터짜리 작품을 낮은 선반에 놓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을 소장한다면 작가노트를 함께 보관하기를 권한다. 그 담담한 몇 줄이 이 천 조각의 절반이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